은미희 단편집 <만두 빚는 여자>
1996년 등단 이후 장편에 주력해 온 소설가 은미희(46)씨가 첫 단편집 <만두 빚는 여자>(이룸)를 묶어 냈다. 표제작을 비롯해 열 편이 묶였다.
<비둘기집 사람들> <소수의 사랑> <바람의 노래> 등의 장편에서 은미희씨는 소외되고 쓸쓸한 변두리 인생들을 따뜻하게 그린 바 있다. 장편보다 더 힘들게 썼다는 단편들에서도 그런 작가적 특성은 여전하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며 혼자서 허름한 분식집을 꾸려 가는 여자(<만두 빚는 여자>), 설렘과 떨림은 사라지고 지리멸렬함과 환멸만 남은 관계를 습관처럼 이어 가는 남과 여(<다시 나는 새>), 이혼하거나 직장에서 떨려난 두 여자친구(<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처자를 북에 두고 월남한 실향민 노인(<나의 살던 고향은>),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 홀로 고향으로 낙향하려는 늙은 어머니(<갈대는 갈 데가 없다>) 등등.
특히, 독신이든 미혼이든 이혼이든, 형태야 어떠하든 간에 혼자 사는 여자들의 삭막한 일상과 쓸쓸한 내면은 여러 작품에서 되풀이 묘사된다. “어쩌다 서로의 등이 닿으면 흠칫 벌레처럼 몸을 접으며 상대의 체온이 자신들의 의식 속에 입력되기를 거부했다”(15쪽)에서 보듯, 이들이 그나마 영위하는 남자와의 관계조차도 온기가 아닌 냉기로 다가올 정도로 상황은 나쁘다. 그런데 엄연한 부부를 등장시킨 <편린, 그 무늬들>과 <새벽이 온다>에도 인용한 문장과 비슷한 정황이 묘사된 것을 보면 이와 같은 관계의 파탄이 딱히 혼자 사는 여자만의 몫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수록작들이 대체로 암울한 상황을 바탕에 깔고는 있지만, 작가는 그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의 근거를 찾기에 안간힘을 다한다. 삭막하고 습관적인 것으로만 여겼던 관계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랑이었다”(126쪽)든가, “이 봄, 가장 화사한 꽃은 할멈이었다”(267쪽)는 식의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그 증거다. <다시 나는 새>에서 “걸맞지 않은 어른스러움”과 “비릿함”으로 무장한 고아 소녀가 “나 입양하지 않을래요?”라는 도발적 제안으로 주인공 여자를 적극적인 행동 쪽으로 추동하는 결말부는 인상적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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