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해부한 병원·치료감호소에서 만난 환자들 마음
조현병·공황장애·우울증 증상 달라도 그 기저엔 가족이 있었다
조현병·공황장애·우울증 증상 달라도 그 기저엔 가족이 있었다
류희주 지음/생각정원·1만7000원 ‘가족’만큼 복잡한 단어가 세상에 또 있을까. 가족은 살아야 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삶을 짓누르고 최악의 경우 살려는 의지를 꺾어버리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병명은 가족>은 가족의 이런 ‘이중성’에 주목한다. 시골 마을의 정신과부터 치료감호소(국립법무병원)까지 다양한 곳에서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만나온 지은이는 책을 열며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가족은 둥지일까, 족쇄일까.” 책에는 ‘족쇄’로 기능하는 가족을 둔 환자의 사례가 줄지어 등장한다. 알코올 중독, 조현병, 거식증, 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 이 질환들은, 증상은 다르지만 ‘일그러진 가족’이란 토양에서 발현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철수(이하 모두 가명)는 어머니에게 라면 물을 붓고, 야구방망이로 복부를 가격해 치료감호소에 왔다. 두 번째였다. 철수는 수년 전 층간소음에 앙심을 품고 위층 집 자동차를 부숴 6년 동안 치료감호소에서 지냈다. 그러고선 퇴소 석달 만에 어머니를 폭행한 것이다. 철수의 상태를 감정하기 위해 상담을 하던 지은이는 수상한 낌새를 발견한다. 철수는 병동 내 ‘실장’까지 할 정도로 모범적이었는데도 죄(기물파손)에 비해 치료감호소에 지나치게 오래 있었다. 당시 철수를 오래 지켜본 수간호사의 말은 의심에 힘을 실었다. “정작 환자는 어머니 같았어요. (…) 정신감정을 신청한 사람도 어머니이고, (퇴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사를 계속 안 본 것도 그 어머니고요.”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의사에게 기도를 종용하거나, ‘치료가 다 됐는지는 하느님이 정하신다’며 치료에 지나치게 개입했다. 철수와 그의 형 영수를 상담한 지은이는 철수의 어머니가 초등학생인 자녀들에게 새벽기도, 성경공부는 물론 매일 등교 전 교회 주변 쓰레기 줍기까지 시킬 정도로 통제가 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현병을 만드는 어머니’ 이론을 떠올린다. 불안하고 과보호적이며 냉정한 어머니에게 양육되면 자식은 조현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이론인데, 대세 이론도 아니고 상당한 공격도 받았으나 지은이는 이 이론에 남아 있는 일말의 진실을 조심스레 꺼내 보인다. “불안정한 가족 형태의 양육은, 조현병에 취약한 소인을 가진 사람에게는 충분한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
일간지 편집기자 출신인 지은이 류희주는 “불안과 우울은 실존하는 병이냐, 인간의 본성이냐”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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