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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빈자 격차 해소가 민주정치의 요체”

등록 2021-02-05 04:59수정 2021-02-05 09:56

‘영웅전’ 저자 플루타르코스의 지혜에 관한 글 모음 ‘모랄리아’
자유로운 토론, 도덕적 삶, 관용의 정신 강조한 정치적 윤리학

모랄리아: 플루타르코스에게 배우는 지혜

플루타르코스 지음, 윤진 옮김/한길사·2만5000원

로마제국 시대의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로마제국 시대의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로마제국 시대의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46~120?)는 방대한 저작을 남긴 사람이다. 4세기에 정리된 플루타르코스 저술 목록을 보면 전체 작품이 227편에 이른다. 흔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부르는 <대비열전>만 해도 그리스와 로마의 위인 50명의 삶을 상세히 기술한 대작이다. 이 열전 말고도 플루타르코스는 수많은 소론을 썼는데, 그 중 78편이 ‘모랄리아’라는 이름으로 묶여 현전한다. 서양고대사학자 윤진 충북대 교수가 옮긴 <모랄리아: 플루타르코스에게 배우는 지혜>는 이 작품집 가운데 ‘지혜’에 관련된 글 5편을 옮겨 묶은 것이다. 연전에 서양고대사학자 허승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모랄리아’ 가운데 교육·윤리에 관한 글 다섯 편을 묶어 옮긴 데 이은 두 번째 ‘모랄리아’ 번역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네 북부 보이오티아 지방 카이로네이아 출신이다. 그리스 본토가 로마에 복속되고 200년 가까이 지난 뒤에 태어나 그리스어로 작품을 썼기에 ‘최후의 그리스인’으로 불린다. 플루타르코스는 젊은 시절 아테네로 유학해 플라톤 철학을 공부한 뒤 제국 곳곳을 여행하고 로마로 가서 철학과 수사학을 가르쳤다. 역사·문학·종교·윤리를 포함한 광대한 지식과 뛰어난 언변으로 여러 후원자를 모았다. 40대 중반에 고향으로 돌아가 카이로네이아 최고행정관이 됐고, 오랫동안 인근 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신관을 지냈다. 플루타르코스는 플라톤 철학을 근간으로 삼되 여러 사상을 열린 태도로 받아들여 절충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자유로운 토론을 중시하고 도덕적 삶에 높은 가치를 두었으며, 덕과 관용을 강조했다. 플루타르코스의 저술은 정치지도자들에게 특히 필요한 이런 덕목을 역사 속의 생생한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 번역본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맨 앞에 실린 ‘7현인의 저녁 식사’다.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만찬을 즐기며 여러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 내용이다. 기원전 7~6세기경에 살았던 일곱 현인이 누구인지는 출전마다 조금씩 다른데,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네 민주주의에 토대를 놓은 입법자 솔론, 밀레토스학파의 첫 번째 철학자 탈레스를 비롯해 비아스, 피타코스, 킬로, 클레오불로스, 아나카르시스를 일곱 현인으로 내세운다. 플라톤의 대화편 <프로타고라스>를 포함한 여러 문헌은 그 일곱 현인들이 아폴론 신전에 새길 경구를 고를 목적으로 델포이에 모인 적이 있다고 전한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글에서 코린토스의 지도자 페리안드로스가 이 일곱 현인을 초대해 만찬을 베푼 것으로 설정했다. 글의 구성을 보면, 대화로 이루어진 소설에 가깝다. 저자가 고대의 여러 사료에서 찾아낸 것들을 기본 자료로 삼아, 플라톤 대화편과 유사한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이 발언하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대화의 소재 가운데 하나는 이집트의 파라오 아마시스가 보내온 편지다. 편지에서 아마시스는 에티오피아 왕의 황당한 요구를 소개한다. 에티오피아 왕이 ‘바닷물을 모두 마시면 자기네 땅을 일부 떼 주겠지만, 마시지 못할 거면 접경지의 이집트 주민들을 철수시키라’는 요구를 해왔다는 것이다. 아마시스는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현인 가운데 한 사람인 비아스가 ‘바다로 흘러드는 강물을 먼저 모조리 막아주면 요구대로 하겠다’고 응수하면 된다고 답하자 참석자들이 모두 찬동한다.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진지하게 답할 것이 아니라 그 방식 그대로 받아치면 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연회 분위기를 띄우는 이야기들에 이어,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은 솔론이 참석한 것을 고려해 ‘민중의 지배’ 곧 민주정치에 관해 토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먼저 솔론이 “왕이나 참주라도 군주정을 폐하고 시민을 위해 민주정을 실시한다면 최고의 명성을 얻을 것”이라고 운을 뗀다. 이어 모든 시민이 공적인 일에 관심을 품고 정의를 실현하려 힘쓰는 나라에서 민주정치가 꽃필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솔론의 말을 받아 비아스는 “모든 사람이 참주를 두려워하듯이 법을 두려워한다면 가장 훌륭한 민주정치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는다. 탈레스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부유해지지도 않게 하고, 지나치게 가난해지지도 않게 하는 것이 민주정치”라고 주장한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가 민주주의의 요체라는 얘기다. 아나카르시스는 ‘덕과 악덕’에 따른 차등에 초점을 맞춘다. “민주정치가 실시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든 면에서 똑같이 존중받는데, 다만 덕과 악덕을 지니는 정도에 따라 더 나은 사람과 더 못한 사람이 구분돼야 한다.”

이어지는 글 ‘왕들과 장군들의 어록’은 플루타르코스가 <대비열전>에서 다룬 바 있는 인물들이 한 말들을 가려 뽑아낸 것들이 중심을 이룬다. 글 전체에 걸쳐 플루타르코스가 강조하는 것은 지도자의 관대함, 열린 마음이다. 그런 사례를 보여주는 일화 가운데 하나를 아테네 민주주의 초기의 정치지도자 아리스테이데스(기원전 530~468)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특정한 당파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정치를 했기 때문에 ‘공정한 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 평판을 받는 사람이 아테네 시민들의 충동적 결정으로 ‘도편추방’ 투표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때 어느 무지한 시골 사람이 도편, 곧 질그릇 조각을 들고 아리스테이데스에게 다가와서 거기에 아리스테이데스의 이름을 써 달라고 했다. 아리스테이데스가 그 사람에게 “아리스테이데스를 아시오?”라고 묻자, “아리스테이데스는 잘 모르지만 공정한 자라고들 하는 것이 짜증 나서 그런다”고 대답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입을 다물고 도편에 자기 이름을 써주었다. 쫓겨날 상황에 놓여서도 기꺼이 절차를 따르는 민주적 지도자의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플루타르코스의 글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끝나지만, 역사는 아리스테이데스가 민회의 투표로 아테네에서 쫓겨남으로써 도편추방제의 부당한 희생자가 됐음을 알려준다. 얼마 뒤 페르시아가 쳐들어오자 아테네 시민들은 아리스테이데스를 추방령에서 풀어주었고, 돌아온 아리스테이데스는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아테네 군대의 지휘를 맡아 대승을 거두었다. 민주주의가 지닌 약점과 함께 정치지도자의 덕성을 거듭 생각해보게 하는 일화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로마 제국 시대의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로마 제국 시대의 그리스 작가 플루타르코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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