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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 쓰기 싫어요!

등록 2021-01-22 05:00수정 2021-01-22 10:19

[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Love That Dog 아주 특별한 시 수업

샤론 크리치 지음, 신현림 옮김/비룡소(2009)

중학교 때 친구는 이외수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안경잽이’ 친구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읽은 조숙한 아이였다. 대학 친구는 여학생 휴게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소설 이야기를 즐겨 했다. 모두 나의 책 읽기에 물과 빛과 바람을 나눠준 이들이다. 얼마 전 케이(K)가 휘스 카위어, 샤론 크리치 같은 옛날 작가를 읽고 있다며, “왜 이렇게 좋은지”라고 고백하는 바람에 갑자기 빗장이 풀렸다. 회오리바람에 실려 오즈의 나라에 도착한 도로시처럼 책 친구와 수다 떨던 시절로 돌아가 버렸다.

샤론 크리치의 은 친구에게 “너 이 책 읽었어?” 하고 호들갑을 떨어야 마땅한 책이다. 시집인 줄 알았는데 동화였고 그렇지만 동화라고 말할 수 없는 시집이다. 이유는 어린이들이 하는 말이 모두 시가 될 수 있음을 교사가 시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시라면 질색하던 아이가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시로 담아내는 감동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학기가 시작되자 스트렛치베리 선생님이 시를 써보자고 한다.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한다. “시 쓰기 싫어요/ 시는/ 여자애들이나 쓰지/ 남자애들은 안 쓰거든요.” 선생님은 소년이 뱉어낸 말을 받아 적어 내민다. 물론 행 갈이는 선생님 몫이다. 다음 수업에 아이는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시 써 봤어요/ 그런데/ 잘 안 돼요/ 머리가 텅 비었나 봐요.” 역시 선생님은 소년의 말을 다시 시로 만들어 돌려주었다.

때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읽어준다. 아이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오는 저녁 숲에 서서’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그 장면이 보이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소년의 마음을 두드린다. 선생님이 윌리엄 블레이크의 ‘호랑이’를 낭송해주자 ‘시 읊는 소리가 아주 기분 좋게’ 들린다는 걸 처음 느낀다. 무엇보다 시를 만나며 소년은 그 사고에 대해 조금씩 말할 수 있었다.

마침내 월터 딘 마이어스의 ‘그 소년을 사랑한다’라는 시를 만나자 소년은 전율한다. 심지어 이 시를 베껴서 침대 위 벽에 붙여놓는다. 아빠가 아들을 사랑해서 부르는 시에서 소년이 노란 개를 사랑으로 불렀던 그 마음을 만났기 때문이다. 아이는 얼마 전 자신의 노란 개가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고를 겪었다. 그 후 노란 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마치 내 속에 들어온 것처럼 마음을 토닥여주는 시를 만났다. 아이는 월터 딘 마이어스를 흉내 내어 노란 개에 대한 사랑을 시로 표현한다. 시를 만나 시를 지으며 슬픔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대체 어린이가 시를 어떻게 만나야 하며, 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놀라운 방법으로 들려주는 책이다. 글을 쓰려면 먼저 좋은 독자가 되어야 한다. 좋은 독자가 되려면 지혜로운 교사가, 감동을 나눌 책 친구가 필요한 법이다. 초등 3학년부터.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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