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의 밤
자크 랑시에르 지음, 안준범 옮김/문학동네·2만5000원
자크 랑시에르(81)는 지난 10여 년 사이 국내에 집중적으로 소개된 프랑스 철학자다. <불화> <무지한 스승>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감성의 분할> <미학의 불만>과 같은 주요 저작도 이 시기에 번역됐다. 이번에 <프롤레타리아의 밤>이 출간됨으로써 랑시에르 저서 번역 목록에 또 하나가 추가됐다.
랑시에르의 사유 여정은 대개 세 시기로 나뉜다. 첫 시기는 알튀세르의 제자로서 스승과 함께 <‘자본’을 읽자> 공동저술에 참여한 뒤 68혁명을 거쳐 알튀세르와 결별한 1974년까지의 시기다. 두 번째 시기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를 아우른다. 세 번째 시기는 1990년대 후반 이후인데, 이 시기에 랑시에르는 미학(감성학)에서 정치적 사유의 실마리를 찾아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분할이라는 틀로 정치를 새롭게 이해했다.
1981년 국가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된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랑시에르 사상 여정의 두 번째 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저작이다. 이 시기에 랑시에르는 19세기 노동자 문서고를 파헤쳐 거기서 전통 마르크스주의가 조형한 노동자상과는 다른 모습의 노동자상을 찾아냈는데,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바로 그 노동자의 삶과 목소리를 담은 대표 저작이다. 랑시에르는 이 책에서 1830년대 초부터 1850년대까지 노동자들이 쓴 수필·일기·편지들을 독해해 이 프롤레타리아들이 밤의 시간에 꾸었던 꿈을 뒤쫓는다.
여기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은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유토피아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던 생시몽주의 사상과 운동을 따르는 이들이다. 제1부는 1830년 7월 혁명 이후 탄생한 생시몽주의 저널에 실린 노동자들의 글을 보여주고, 제2부는 1940년대까지 발전해 나간 생시몽주의 실천과 논쟁을 다룬다. 제3부에서는 유토피아주의자 에티엔 카베가 미국에서 실험한 ‘이카리아 공동체’의 건설과 실패와 환멸을 그린다.
이 책은 논문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역사소설에 가깝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철물공 제롬피에르 질랑, 재단사 데지레 베레, 내의 제조공 잔 드루앵, 계량용기 제조업자 피에르 뱅사르 같은 인물들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은 이질적인 목소리를 낸다. 마르크스주의 서사가 그려내던, 역사 발전을 이끄는 주역으로서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랑시에르는 단일한 형상으로 총합할 수 없는 ‘소문자 주체들’의 꿈과 좌절과 비애를 그림으로써 지배담론의 질서 바깥에 있는 목소리를 복원하고 그 목소리들을 억누른 ‘대문자 역사’에 이의를 제기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