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숙 지음/글항아리·1만8000원 ‘억척’이란 단어엔 세 가지 동사가 겹겹이 쌓여 있다. ‘견디다. 맞서다. 끌고 가다.’ 구술 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전남 나주에서 살아가는 60대 여성농민 두 명의 일생을 기록한 책 <억척의 기원>을 읽고 나면, 억척이란 날 때부터 타고난 품성이 아니라 연쇄적인 불운을 거치고 나서야 단단하게 확립된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땐 내가 참 너무 뭘 모르고 착해 빠지기만 해서. 지금 같으면 싹 다 뒤집어엎어불제.” 60년생 정금순은 순둥이였다. 성관계를 하면 무조건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다. 첫 데이트에서 ‘당한 성관계’는 불행 도미노의 시작이었다. 임신 3개월부터 전 남편은 외도했으며, 생활비를 일절 주지 않았다. 그렇게 16년을 ‘견디다’ 정씨는 이혼소송을 했다. 양육권, 양육비 다 필요 없으니 그저 헤어지게만 해달라고 판사에게 빌었다. 이혼을 쟁취하고는 본격적으로 불행에 ‘맞섰’다. 목욕탕 세신사로 10년을 일하며 두 자녀를 홀로 키웠다. “남들 보기에는 심난스럽고 불쌍해 보였을랑가 몰라도 나는 너무 좋았어요. 보람도 있고 내 삶을 사는 것 같고.” ‘끌려가던’ 삶에서 ‘끌고 가는’ 삶으로의 첫 전환이었다. 또 다른 인터뷰이 김순애의 삶도 비슷하지만 다른 경로(배우자의 외도-시집살이-이혼-자립)를 거쳐 주체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들의 삶을 듣고 적으며 지은이는 말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삶과 스스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삶 사이의 길항 속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저항하는지에 따라 정체성이 형성되고 계속 변태하며 나아가는 게 인생이다.” 두 여성의 삶을 끝까지 파고든 작가가 전하는 인생론에 조용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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