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선집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책세상·4만8000원
19세기 영국 자유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주요 저작을 모은 <존 스튜어트 밀 선집>이 밀 사상을 연구해온 정치학자 서병훈 숭실대 교수의 번역으로 나왔다. 밀 사상의 정수를 담은 ‘공리주의’, ‘자유론’, ‘대의정부론’, ‘여성의 종속’ 그리고 밀 사후에 출간된 ‘종교론’과 ‘사회주의론’이 함께 묶였다. 이 선집에 실린 글만 읽어도 밀의 정치·사회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글들 가운데 그동안 비교적 관심을 덜 받은 것 가운데 하나가 ‘사회주의론’이다. 밀은 자유주의의 대표 사상가이고 흔히 자유주의가 사회주의와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밀이 ‘사회주의론’을 썼다는 것은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옮긴이도 밀이 사회주의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밀의 저작을 파고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주의론’은 정직하고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로서 밀의 태도가 잘 드러난 저작이다. 밀은 노동자계급이 겪은 극심한 불평등에 도덕적으로 분노한다. “그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나 정신적·도덕적 이점을 향유하지 못한다. 이는 인류가 지금껏 없애기 위해 싸워온 그 어떤 악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가난한 사람들이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현재의 소유권 제도가 타당한지 “아무런 편견도 없이” 공평하고 이성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어 밀은 이 글에서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과 푸리에주의자 빅토르 콩시데랑의 논의를 소개한 뒤, 이 주장에 담긴 난점을 살핀다. 핵심은 공산주의식 계획경제와 경쟁 부재가 경제의 발전뿐만 아니라 개인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밀은 공산주의가 실현되려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높은 수준에 올라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밀이 당대의 불평등 체제를 떠받치는 소유권 제도를 긍정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밀은 사유재산권이 절대적 권리가 아니며 “사회는 충분한 검토 끝에 공익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특정 재산권에 대해서는 그 어느 것이든 폐지하거나 변경할 완전한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이어 그 변화의 핵심은 “현재 상황에서 사회가 주는 직접적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밀의 이런 생각은 후대에 진보적 자유주의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밀의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은 만년에 쓴 <자서전>에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밀은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밝힌다. “노동생산물의 분배가 누구나 인정하는 정의의 원칙에 따라 행해지는 사회, 인류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와 전체 이익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를 기대한다.” 특히 “미래사회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개인 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지구 상의 원료를 공동 소유에 두고, 협동 노동으로 생기는 이익에 만인이 평등하게 참여하게 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주장에서 밀이 추구한 사회주의가 자유와 화합할 수 있는 사회주의, 곧 ‘자유사회주의’(liberal socialism)임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론’은 자유사회주의자 밀의 깊은 고민이 담긴 저작인 셈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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