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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패기있게 재구성한 한국 성장사

등록 2021-01-01 04:59수정 2021-02-24 19:50

산업화·민주화 세대 극복 통해 낙관주의로 전환 시도
낀 세대 1980년대생들의 확신 가득한 미완의 정치선언

추월의 시대

김시우·백승호·양승훈·임경빈·하헌기·한윤형 지음/메디치미디어·1만7000원

<추월의 시대>는 시종일관 넘어서려 ‘애’쓴다. ‘친일’과 ‘좌빨’, ‘보수’와 ‘진보’,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대립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추격의 시대’를 넘어 이제 ‘추월의 시대’로 가리라는, 가야만 한다는 과감하고 패기 있는 외침이다. 더는 이른바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가 없으며, 자부심을 가질 만한 자격을 갖췄다는 것이다.

주로 정치 유튜브 ‘헬마우스’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이 함께 썼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를 쓴 소장학자 양승훈(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을 제외하면 방송작가 출신인 헬마우스 진행자(임경빈), 헬마우스를 만든 책임 프로듀서 하CP(하헌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김시우), 기술·장비 담당(백승호) 등이 중지를 모았다.

자부심 불러 일으키는 ‘대한민국 낙관주의’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개발도상국의 ‘떡상’ 수준의 성공 사례에서 두 노선은 제각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는 절충적 서술이 가능할 것이다. (…) 전반적으로 볼 때 한국의 경제 ‘기적’은 누군가의 선물로 이뤄진 일이 아니었다.”

한 노선은 박정희가 앞장서고 남덕우·오원철 등이 떠받쳤던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 노선이다. 익히 알려진 중화학공업 중심의 개발독재다. 또다른 노선은 시장주의자 김재익과 김기환, 강경식 등이 전두환 시대에 주도한 시장 중심의 노선이다. 이 두 노선의 절충과 함께, 한국인의 욕망과 근면성, 저력과 집착이 ‘한강의 기적’의 뿌리라고 이 책은 역설한다.

민주주의 체제의 확립 과정은 민주화 세력의 산업화 세력에 대한 극복으로 이해되어왔는데, 이 책은 중도파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이를테면 “1987년 6월항쟁을 지지하여 제5공화국을 무너뜨린 시민들의 3분의 1 정도가 직후의 대선에서 신군부 출신 노태우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군부독재 권위주의 정부를 주도한 세력을 완전히 퇴출시켜야 한다는 견해까지 동의한 적은 없었”으며 그들에게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 권력을 줘도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군의 시민 그룹도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그룹이 이 책이 꼽는 중도파다. 이들이 “세상을 바꾸면서 균형을 맞추는 사람들이었고, 그 요구가 실제로 세상을 바꾸었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저자들은 다양한 절충과 재구성, 재정의를 통해 열등감을 버리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외친다. 케이(K)-방역을 언급하고 케이팝을 거론한다. 급기야 “도대체 식민지 출신인 게 왜 부끄럽냐고 말이다. 사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식민지 출신이다. 그리고 한국은 식민지 출신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몇 안 되는 나라이며 그중 가장 강대국이다”라고 강조하는 데까지 나간다.

‘낀 세대’ 1980년대생이여 전위에 서라!

이 책의 공저자들은 모두 1980년대생이다. 부모는 개발도상국을 이끈 산업화 세대이며 이들은 청년기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을 겪은 첫 세대다. 이 책의 내용이 80년대 세대론은 아니지만, 80년대생들이 새롭게 조망하는 한국사회라는 점에서 또다른 세대론 내지 역할론을 내포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산업화와 민주화 양쪽의 수혜를 모두 받은 첫 세대여서 각종 대립과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의 속내는 ‘역사화해서 집에 잘 보내드리기’라는 표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문제의 핵심은 산업화 세력이든 민주화 세력이든 본인들이 만들어낸 폐쇄적인 서사에서 주인공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어서 “히어로의 위선을 지적하는 것으로 히어로를 퇴장시킬 수 없”으니 “유일한 방책은 히어로가 이미 자신의 미션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음을 깨닫게 하는 것뿐”이라고 한다. 과거 세대의 역할과 의의를 인정하고 평가하되 이제는 두 세대 모두의 바탕을 이루는 열등의식을 극복할 때가 됐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 책엔 정치적 함의가 가득하다. 이런 실험 자체가 일종의 ‘각자도생의 사회’를 뛰어넘기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글마다 저자가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다. 출판사 쪽에서는 “하헌기는 전체 기획과 각 저자 간의 소통 문제를 담당했고 한윤형은 원고 전체의 통일성을 조율했다”고 설명했다. 개인의 글이 아니라 집합의 저작이라는 얘기다. 책에 실린 공저자들의 단체 사진은 ‘투쟁 단체’ 결성식이라도 벌인 듯 보인다.

확신 가득하지만 미완…시발점 알리는 선언

이들의 야심찬 작업은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정밀한 분석이 필요한 난이도 높은 작업이어야 하지만 설익은 대목이 눈에 띈다. 전체 글이 고르지 못하고 추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곳도 적지 않다.

민주체제 확립의 주역으로 끌어올린 중도파를 설명할 때 “양측을 일관되게 지지한 시민 그룹 이외에 중간에서 본인들의 삶의 필요에 따라, 혹은 직관적으로 실용적 선택을 반복해온 그룹이 역사를 만들어왔다”는 것은 ‘추정’일 뿐이다. 한 설문조사 결과 ‘미·중 사이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가면서 북한과 교류 협력’하는 외교정책을 선호하는 이들이 절반에 가까운 다수였는데도, “한국의 청년세대는 다수파가 친미를 지향한다”고 분석하는 것은 다소 무리하게 비춰진다. 이밖에도 1997년 이후 10년을 산업화 세력이 통으로 부정했다는 전제는 그리 타당해 보이지 않고, 진중권·이철승 등의 일부 기존 주장을 반박하는 지점이 지엽적 수준에 머무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이 책은 넓은 의미의 정치적 “선언문이자 팸플릿”이라는 점에서, 또한 논의의 시발점을 알렸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작지 않다. 이 책이 끝은 아닐 것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lt;추월의 시대&gt;를 쓴 공저자들. 왼쪽부터 김시우, 한윤형, 하헌기, 임경빈, 양승훈, 백승호. 메디치미디어 제공
<추월의 시대>를 쓴 공저자들. 왼쪽부터 김시우, 한윤형, 하헌기, 임경빈, 양승훈, 백승호. 메디치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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