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허시먼: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
제러미 애덜먼 지음, 김승진 옮김/부키·5만5000원
앨버트 허시먼(1915~2012)은 제3세계 개발경제학 연구자로서 이력을 시작해 인문사회과학 전반을 횡단한 미국의 걸출한 경제학자다. 특히 학자로서 후년에 들어선 뒤로는 경제학 영역을 넘어서는 독특한 주제의 책들을 써 학계와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 시기에 쓴 책들 다수가 우리말로도 번역돼 있다. <정념과 이해관계>는 자본주의의 정신적 기원을 정치와 경제를 아울러 서술한 경제사상사 저서이며,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는 기업과 국가를 비롯한 퇴보하는 조직에서 나타나는 행동유형을 분석한 책이다. 만년에 쓴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서는 개혁에 부정적으로 반작용하는 보수파의 말들을 분석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헤쳤다. 역사학자 제러미 애덜먼(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이 쓴 <앨버트 허시먼>은 평생 주류 경제학에 반항하며 자신만의 관점으로 학문의 길을 찾은 이 비범한 학자의 일생을 그린 방대한 전기다.
허시먼의 삶은 한 편의 기나긴 ‘오디세이아’와도 같다. 1915년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허시먼은 대학에 들어간 직후인 1933년 나치 집권으로 유대인 탄압이 본격화하자 조국을 떠나 프랑스로 피신한다. 이때부터 연구자로서 ‘공부하는 삶’과 실천가로서 ‘행동하는 삶’을 병행한다. 파리·런던·이탈리아를 오가며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연구자의 삶이라면, 스페인내전에 뛰어들어 전투를 치르고 이탈리아 반파시즘 저항운동에 가담한 것은 행동가의 삶을 보여준다. 2차세계대전이 터지자 프랑스군에 입대하고,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한 뒤에는 마르세유에서 유대인 예술가·지식인들을 탈출시키는 활동에 나선다. 마지막에야 허시먼은 미국으로 탈출한다.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에서 연구활동을 하던 허시먼은 독-소 개전 소식을 듣고 다시 미군에 입대해 북아프리카·이탈리아 전선에서 통역병으로 복무한다.
종전 뒤 미국 연방제도이사회에 일자리를 얻은 허시먼은 마셜플랜(유럽부흥계획) 입안 실무자로 활약하지만, 곧이어 불어닥친 매카시즘 광풍에 떠밀려 직장을 잃는다. 그 뒤 허시먼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찾아온다. 세계은행에 자리를 잡아 콜롬비아 정부의 국가계획위원회 자문관으로 일하게 된 것인데, 여기서 겪은 경험이 바탕이 돼 제3세계 경제개발의 기념비적 저작인 <경제발전전략>이 태어난다. 1950년대 말 학계에 발을 들여놓은 허시먼은 컬럼비아대·하버드대를 거쳐 프린스턴고등연구소에 자리를 잡는다. 사회과학 전반을 아우르는 학문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허시먼은 10대 시절에 독일 사회민주당에 가담한 뒤 평생토록 극좌 혁명도 극우 반동도 거부하고 ‘개혁 노선’을 일관성 있게 추구했다. 허시먼이라는 이단아의 긴 인생 여정을 뒤쫓는 이 전기는 한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의 초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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