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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등록 2020-12-04 05:00수정 2020-12-04 10:57

[책&생각]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시공사(2020)

집은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부동산이라는 용어로 치환되면 한국 사회에서는 그 무게가 너무나도 달라진다. 집은 이 사회의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꼭 차지해야 하는 궁극의 목표이다. 누구나 “무슨 집을 어떻게 사야 하지?”라는 질문을 끌어안고 사는 시대, 그러다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뒤로 밀리고 만다.

<빛의 현관>의 원제는 북쪽의 빛을 뜻하는 ‘노스라이트’(North light)이다. 많은 경우 번역 과정에서 바뀐 제목이 원래의 은유를 다 살리지는 못하는데, 이 제목은 더 그렇게 느껴진다. 가독성뿐 아니라 당대적 이해를 고려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창의 방향과 빛의 양이 바로 가격으로 환산되는 이 사회에 북쪽의 빛을 바라보는 집이라니, 결국 인테리어 잡지 카피처럼 더 매혹적인 어구인 ‘빛의 현관’으로 뭉뚱그린 인상도 있다.

실로, 방향을 북쪽에 두고, 남쪽과 동쪽의 빛을 모두 끌어모으는 집을 짓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직원이 모두 다섯 명인 건축 사무소의 건축사 아오세 미노루는 거품 경기의 패잔병으로 자신을 인식한다. 잘나갔던 시기도 지나가고 아내와도 이혼, 남은 삶을 부록처럼 살아가는 사람. 그런 그에게 얼마 전 의외의 의뢰가 들어왔다. 산 아래 팔십 평의 대지, 최대 삼천만 엔의 예산, 아오세 본인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아오세가 지은 집이 바로 이 노스라이트의 와이(Y)주택이었다.

그런데 아오세의 정신적 부활을 일으킨 Y주택의 건축주 요시노 도타가 사라지고 만다. 공들여 지은 집에 이사 온 가족은 없었다. 아오세는 왠지 그 가족을 찾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일반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들의 흔적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아오세는 독일 출신의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가 일본에 남긴 유산을 만난다. 여기에서 그는 과거 비밀의 실마리와 함께 삶에 깃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축과 예술을 그려볼 기회를 얻는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종신 검시관> <64> 등 선 굵은 경찰 소설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 기저에 흐르는 엄격하면서 자상한 가부장에 대한 긍정은 <빛의 현관>에서도 여전하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존경할 만한 아버지상에 대한 욕망이 좀 더 온화하고 철학적으로 바뀌었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를 독자에게도 묻는다. 거기에서 다시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묻는다.

“영혼을 끌어모아서도” 내가 살 집을 구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한 시대이기에, 이 책을 더욱 유심히 읽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빛의 현관>은 말한다. 차가운 북쪽에서도 빛이 흘러들어온다. 나의 영혼이 어디에 있든 빛은 우리를 환대할 것이다. 소설적 낭만이지만, 지금 모두의 궁극의 바람이기도 하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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