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무기들
조정환 지음/갈무리·2만3000원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동료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를 두고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기록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만큼 철학적 사유의 힘이 강했다는 뜻일 터인데, 들뢰즈의 영향력은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도 계속될 모양이다.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가 쓴 <개념무기들>은 지은이 자신이 25년 동안 공부해온 들뢰즈의 철학을 기계·시간·정동·주체·정치·속도를 주제로 삼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지은이는 애초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의 ‘자율주의’ 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국내에 소개해왔다. 그 네그리가 <제국> <다중> <공통체> 같은 주요 저작을 집필할 때 철학적 동반자이자 사유의 스승으로 삼은 사람이 들뢰즈다. 말하자면, 네그리 사유의 원천이 들뢰즈인 셈이다. <개념무기들>은 지은이의 연구 경로가 네그리 사상을 지나 네그리 사유의 바탕을 이루는 들뢰즈로까지 직진했음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의 초기 저작 <차이와 반복> <의미의 논리>에서부터 <안티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 그리고 말년의 저작인 <철학이란 무엇인가>까지를 아우르며 들뢰즈 사상을 체계적으로 안내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개념 무기’를 ‘개념 도구’와 구분한다. ‘개념 도구’는 자본과 국가에 예속돼 쓰이는 철학 개념을 가리킨다. 들뢰즈는 서구의 주류 철학자들이 자본과 국가에 봉사하는 ‘사유의 공무원’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들이 쓰는 철학 개념을 도구라고 지칭한다. 반면에 ‘개념 무기’는 권력의 도구가 되기를 거부하며 인간의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활동에 복무하는 철학 개념을 가리킨다. 물론 무기는 단순한 파괴의 도구가 아니며 “속도라는 고유한 벡터를 출현시키는 행동의 기제”다. 자본과 국가의 체제 바깥으로 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개념 무기라는 얘기다. 지은이는 철학자란 국가의 공무원이나 군인이 아니라 민중의 도래를 촉진하는 전사라고 말한다.
들뢰즈 철학에는 정치학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책에서 들뢰즈에게 정치학이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 들뢰즈 정치학을 부각하는 데 가장 큰 힘을 기울인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들뢰즈 정치학은 ‘소수의 정치학’이다. 지은이는 들뢰즈 현상이 20세기에 세 번 일어났다고 말한다. 1968년 혁명 시기에 들뢰즈는 ‘차이의 사상가’로 나타났다. 1989년의 들뢰즈는 ‘도주선의 철학자’로 나타났다. 1999년 시애틀의 반세계화 시위에서 들뢰즈는 ‘리좀과 네트워크의 정치철학자’로 나타났다. 여기서 들뢰즈는 자본가들의 다수적·수목적 연합에 맞선 다중의 소수적·리좀적 연합에 주목하는 철학자다. 이런 ‘들뢰즈 현상들’에서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정치학’이 어떤 형상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지은이는 21세기 들뢰즈는 마르크스주의의 전 지구적 혁신을 주도하는 사상가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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