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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하루키적인, 지극히 하루키적인

등록 2020-12-04 04:59수정 2020-12-04 10:51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문학동네·1만4500원

ⓒ Ivan GimNinez-Tusquets Editores
ⓒ Ivan GimNinez-Tusquets Editores

<일인칭 단수>는 무라카미 하루키(사진)가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단편집이다. 표제작을 포함해 단편 여덟이 실렸다. 재즈와 클래식, 야구 등 하루키가 좋아하는 품목들이 소재로 쓰이고 하루키 자신이 등장하기도 한다. ‘일인칭 단수’란 물론 ‘나’를 가리키거니와, 수록작 모두가 ‘나’의 시점을 취했다는 점에서도 이 소설집은 지극히 하루키적이라 하겠다.

단편 ‘돌베개에’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 시절 동료였던 여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와 여자는 어느 날 우연찮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는데, 이 여자는 일본 고유의 짧은 시인 단카를 짓고 그 작품들을 모아 한정판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직업 문인은 아니었음에도 그의 단카는 고유한 자기 세계가 있어서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나’에게 울림을 준다. 그 단카를 가리켜 화자는 “시간의 바람”이 지나간 뒤 땅 위로 고개를 내미는 “살아남은 말들”이라 표현하는데, 문학에 대한 애정 어린 비유로 읽을 법하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느 날 문득 “막연한 위화감” 또는 “마땅히 존재해야 할 정합성이 어디서부턴가 손상돼버렸다는 감각”(이상 ‘일인칭 단수’)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그런 위화감과 손상 감각의 연원을 찾아 모험을 떠나고는 한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에서도 주인공들은 어쩐지 현실과 사개가 맞지 않는 듯한 느낌에 맞닥뜨리고, 장편들에서보다는 한결 작은 규모로 모험과 일탈을 경험한다. <도쿄기담집>에 실린 ‘시나가와 원숭이’의 후속작인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이 대표적이다. 화자가 쇠락한 온천 마을에서 만난, 사람의 말을 하는 원숭이의 고백은 사랑과 이름에 관한 참신한 시각을 보여준다.

표제작 ‘일인칭 단수’에서 주인공 남자는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혼자 바에서 술을 마시며 책을 읽던 중 낯선 여자로부터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다. “멋부리고 혼자 바에 앉아서, 김렛(칵테일)을 마시면서, 과묵하게 독서에 빠져 있는 거. (…) 그런 게 멋있다고 생각해요? 도회적이고, 지적이라고 생각하느냐고요?” 이 대목은 어쩐지 하루키의 소설을 두고 댄디즘이라 비난하는 세평을 극화해 놓은 장면처럼 보인다. 이 여성은 내처 “삼 년 전, 어느 물가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부끄러운 줄 알아요”라 쏘아붙이지만, 주인공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는 부당한 규탄”이라 생각하며 급히 자리를 빠져나온다. 그렇다면 그가 불쾌함보다는 “혼란스러움과 난처함”을 느꼈다는 소설 말미의 토로 역시 자신의 소설에 가해지는 비판을 대하는 하루키의 반응을 요약한 표현이 아닐는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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