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영 작가는 25일 <한겨레>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계절과 온도의 변화에 민감한 편”이라며 “다음에는 기후변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강민영 제공.
부디, 얼지 않게끔
강민영 지음/자음과모음·1만3000원
어느 날 갑자기 개구리나 뱀 같은 변온동물이 된다면? 그들처럼 날씨가 쌀쌀해지면 겨울잠을 자야 한다면? 여행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 최인경은 이 무시무시한 가정법의 상황에 놓인다. 30도가 훌쩍 넘는 베트남에 출장을 가서도 땀 한 방울을 흘리지 않는다. 외부의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성을 지닌 ‘변온인간’이 된 것이다.
인경의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난 걸 가장 먼저 알아준 이는 출장을 함께 간 직장 동료 송희진이다. “팔 그리고 그 목, 목에서 한 번도 땀 안 나는 사람이 어딨어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알아요. 덥거나 춥거나 거기선 땀 한 방울 정도는 흘러야 하는데, 사람이라면 그래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희진의 말에 인경은 당혹스럽다. “만일 내가 영영 변온성을 가진 인간으로 변해버렸다면, 그러니까 열대 기온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 확실하다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 그의 불안한 마음을 알아챈 희진이 말한다. “대리님, 혹시라도 무슨 일 있거나 어디가 갑자기 아프거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꼭 말해주세요.”
<부디, 얼지 않게끔>은 열대 기온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변온인간이 된 최인경과 그를 돌보는 직장 동료 송희진의 이야기를 그린 경장편 소설이다. 강민영 작가의 첫 소설로, 올해 제3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현실에 지친 우리에게 환기될 법한 인생 휴지기에 대한 열망을 변온인간이라는 흥미로운 발상으로 소설화한 작품”(심사위원 소영현 문학평론가)으로 평가받았다. 두 여성을 통해 현재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공존과 돌봄의 의미를 짚어낸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다.
소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절과 온도의 변화에 따라 몸의 상태가 달라지는 인경의 상황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사계절을 함께 보내는 인경과 희진, 두 여성의 우정과 연대가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룬다. 그들이 처음에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 서먹한 직장 동료에서 서로를 돕는 끈끈한 동료가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희진은 인경이 건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운동을 함께하고 몸에 좋은 영양제를 챙겨준다. 매일 ‘잘 있나요?’ 안부를 묻고 다정한 말도 건넨다.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온다던, 그 순간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분하게 찾아보자던 희진의 말. 원인을 찾아 헤매기보다 앞으로를 대비하자는 희진의 다독거림은 확실히 효력이 있었다. 희진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믿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의 곁을 지킨다. 제주도에 함께 간 인경과 희진은 산에서 길을 헤맨다. 험한 산길을 지날 때마다 서로 손을 맞잡고 그들은 무사히 숙소에 돌아온다. 곯아떨어져 누운 그때, 인경은 옆에 있는 희진에게 손을 뻗는다. 그 순간 “기분 좋은, 주머니 속에 넣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그런 온기”를 느낀다. 불안하고 막막한 삶을 위로하는 따뜻함이다. 그것은 한 사람을 살리는 힘이기도 하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어느 날 갑자기 기괴한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가 외롭고 불안한 생활을 하며 죽어간 것과 달리 인경의 곁에는 희진이 있었으니.
희진의 돌봄으로 소소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인경은 희진에게 먼저 따뜻한 손을 내민다. “희진 씨가 변온인간으로 바뀌면 내가 도와줄게요.” 둘의 친밀한 관계는 서로를 살리는 돌봄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은 인경이 겨울 동안 잘 수 있는 ‘동면의 집’을 만든다. 다시 따뜻한 봄에 만날 것을 약속하며.
소설은 변온인간, 겨울잠이라는 에스에프(SF)적 소재를 지금 여기의 현실 공간에서 다룬다. 특히 배경이 되는 여행사라는 직장 공간은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민소매 옷을 입고 주황색에 가깝게 머리 염색을 하는 희진은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관종’이라고 놀림을 받는다. 사람들은 희진과 말도 하지 않고 따돌린다. 인경은 희진과 가까워지며 그가 겪어온 직장 내 따돌림이라는 관계적 폭력을 보게 된다. 그제야 인경은 희진의 상황을 돌이켜보며, 반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번갈아 가며 서로를 따돌리고 서로가 따돌림 당했던 초등학교 고학년 때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성인들이 만든 따돌림의 세계에도 의미 없는 동조와 편 가르기가 있다. 그 역시 그 세계의 공범자였다. “우리의 일상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나도 분명 실수했을 거라고 희진에게 이야기했다.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간에 리트윗하고 공유하며 나도 모르게 희진에게 상처 주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강민영 작가는 25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변온인간이 되는, 예상치 못한 큰 변화를 겪는다. 마치 재난을 겪거나 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그런 힘겨운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어나고 변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소설을 집필할 때 지난해 10월과 11월 잇따라 세상을 떠난 설리와 구하라, 두 여성을 생각하던 시간의 일부분도 소설을 엮이게 했다. 그는 “불특정 다수의 위해가 닿지 않는 곳에 그녀들이 온전히 당도했기를 바랐고, 희진과 인경도 겨울을 지나 ‘안전한 봄’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마침표를 찍었다”고 했다. ‘안전한 봄’은 서로를 걱정하고 이해하고 돌보는, 그 마음이 얼지 않을 때 찾아올 테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