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유죄
김수정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낙태죄 위헌 소송’을 이끈 김수정 변호사가 20여년간 법정에서 목도한 여성 인권 투쟁을 기록했다. <아주 오래된 유죄>는 한국의 법과 그 법의 집행자들이 여성에게 가해진 다양한 폭력을 외면해온 사례를 세세히 짚었다. 몰래 촬영된 영상이 퍼지게 됐지만 피해를 추산조차 할 수 없는 디지털 성범죄, 압도적인 이용자 규모에 절망하게 되는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처럼 근래에 대두된 문제들과 오래전부터 지속돼왔지만 근절되지 않은 직장 내 성희롱, 가정 내 폭력 문제는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아서 서글프다.
원치 않는 성폭력에 대항하다 남성에게 상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여성의 56년 만의 재심 청구 사건을 만나면 견고한 모순들이 어떻게 여성의 삶을 해쳐왔는지 실감하게 된다. 사건·사고 속 여성들의 피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산발적으로 보도되기에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기보다 즉각적 분노 표출로 이어지곤 하는데, 책에 망라된 여성들의 고투를 따라가다 보면 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된다. 이주여성, 미혼모 등이 겪는 사회 구조적 문제도 들여다보도록 이끌며, 때론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무관심했던 미군 기지촌 ‘위안부’ 여성의 아픔도 우리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게 한다.
남자들에게 당한 일을 그대로 되갚자는 ‘미러링’을 두고 지은이는 “내 눈에 미러링은 여성의 비명”이라고 말했다. 왜 여성들이 이런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여성이 겪은 총체적 피해를 먼저 이해하는 데 정제된 목소리로 서술된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될 듯하다. 권김현영 여성학 연구자는 이 책을 “페미니즘 입문서로 자신 있게 추천”했다. 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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