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밀과 토크빌
서병훈 지음/아카넷·2만7000원
19세기 정치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과 존 스튜어트 밀을 연구해온 서병훈 숭실대 교수가 두 사람의 정치사상을 비교하는 연구서 <민주주의―밀과 토크빌>을 펴냈다. 지은이는 토크빌과 밀이 민주주의를 옹호하면서도 민주주의에 내장된 약점을 들여다보며 그 약점을 극복할 방안을 찾은 사상가라고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는 이때에 두 사람의 민주주의 사상이 민주주의의 건강한 발전에 도움이 될 중요한 통찰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토크빌(1805~1859)과 밀(1806~1873)은 한 살 차이로 프랑스와 영국에서 태어나 서로 긴밀히 교유한, 19세기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거인이다. 두 사람의 우정은 토크빌이 30살이던 1835년 대표작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를 출간하자, 이 책을 읽은 밀이 프랑스에 있던 토크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밀과 토크빌의 편지 대화는 10여년 간 지속됐으며 정치를 보는 태도가 유사해 서로 많은 자극을 받았다. 두 사람이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의정 활동을 했다는 점도 닮았다. 밀은 토크빌보다 늦게 자신의 주저인 <자유론>과 <대의정부론>를 썼다.
두 사람의 정치사상은 간단히 요약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은 두 사상가가 공히 ‘민주주의가 지닌 약점’을 파고든 지점에 주목한다. 토크빌은 민주주의가 ‘민주적 전제’로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를 원칙으로 하지만, 이 다수의 지배가 제어되지 않을 경우에는 생각이 다른 소수를 억압하는 ‘민주 독재’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밀도 비슷한 걱정을 했다. 밀은 노동자와 여성의 참정권 확보를 위해 힘썼지만, 동시에 대중이 주권자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공익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권자가 사적인 계급이익에만 매몰될 경우엔 민주주의가 사악하고 무능한 정치체제로 타락할 수 있다는 걱정이었다.
이런 민주주의의 허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토크빌은 ‘참여 민주주의’를, 밀은 ‘숙련 민주주의’를 각각 제안했다. 토크빌은 미국 곳곳을 둘러보고 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 “인민들로 하여금 자기 조국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가장 강력한, 아마도 유일한 방법은 정부 일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참여를 통해 평등사회의 가장 큰 질병인 물질적 개인주의를 극복할 길을 찾은 것이다. 밀도 공공 영역에서 대중의 참여를 늘려 나가면 사람들이 지적·도덕적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믿었다. 다만 밀은 그런 참여가 일정한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지적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들이 정치적으로 더 큰 발언권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대의정부론>에서 정치적 사안에 숙련된 현명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지도하는 ‘숙련 민주주의’를 제창한 이유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