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을 받거나 받지 않는 행위는 때로 상당히 정치적인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에 대해 알게 되면서 상당히 감동을 받았고 매우 기뻤습니다. 이 상은 서구로부터 그리고 힘 있는 국가들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우리가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상이고, 지난 수상자들도 훌륭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10일 오후 한국 기자들과 온라인 회견을 했다.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 모인 기자들과 인도 현지에서 온라인으로 연결된 로이는 “저는 제 책의 인세가 제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곳에 기부하고 있는데, 이번에 받게 된 상당한 액수의 상금(5천만원)도 마찬가지로 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50여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 이호철(1932~2016)을 기려 제정된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1회 김석범(재일조선인), 2회 사하르 칼리파(팔레스타인), 3회 누루딘 파라(소말리아)에 이어 올해 제4회 본상 수상자로 아룬다티 로이를 선정했다. 상금 2천만원의 특별상에는 <9번의 일>의 작가 김혜진이 선정되었다.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세계적 권위를 지닌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소설 대신 논픽션 집필에 매진하면서 인도의 계급제도와 댐 프로젝트, 미국의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침략,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에 맞서 싸웠다. <작은 것들의 신>으로부터 20년 만인 2017년에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소설 <지복의 성자>는 올 초 한국에도 번역 출간되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당대 인도 현실을 치열한 내부자의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이를 역사의 거시적 흐름 속에 놓을 수 있는 안목이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수상자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로이는 “작가의 역할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라며 “내가 쓰는 글은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모두 문학적 활동이고, 종류가 달랐을 뿐 나는 항상 문학을 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과 정치를 인위적으로 분리시키는 과거의 자유주의적 서구 담론은 현상 유지에 기여해 왔다”며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뼈와 피의 관계처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고, 작가로서 나는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작품에 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고 그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려 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로이는 “제 작품들은 저의 존재의 가장 큰 부분인데, 제가 가 보지 않은 곳에 저의 글을 통해 저를 잘 아는 독자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은 매우 감동적인 일”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연기된 시상식이 내년에 열리면 꼭 한국을 찾아 독자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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