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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나’란 존재 찾아가는 아슬아슬한 여정

등록 2020-10-30 04:59수정 2020-10-30 09:27

스노볼

박소영 지음/창비·1만4800원

박소영의 장편소설 <스노볼>엔 평균기온이 영하 41도인 혹한기의 세상이 펼쳐진다. 열여섯 살 ‘전초밤’은 주변 사람들처럼 발전소에 나가 전기를 생산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이들에겐 보상으로 ‘스노볼’에서 만들어진 리얼리티 드라마를 맘껏 시청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유리로 된 돔으로 둘러쳐진 스노볼은 따뜻한 지역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액터’로 불리며 담당 ‘디렉터’에 의해 편집된 삶이 세상에 전면 공개된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액터의 희로애락을 지켜보며 삶의 에너지를 얻거나 대리만족을 하기에 드라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추위를 견디며 전기를 생산하거나, 안온한 환경이 보장되는 대신 사생활을 공유해야 하는 삶. 여기에서 자유로운 건 스노볼의 시스템을 설계한 미디어그룹의 사주 일가와 디렉터들뿐이다. 언젠가 디렉터가 되기를 꿈꾸던 초밤은 최고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고해리’와 닮은 외모로 인해 대리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안받는데, 이 제안은 그녀를 ‘나로서 존재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끈다.

초밤이 스노볼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얇은 유리판 위에 선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사회는 유독 투명한 세계라는 인상을 주입시키지만 시스템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베일에 가려지며, 굴절되고 불균형한 모순점들은 편집된 쇼를 통해 삭제된다. 진실이 훼손되는 미디어의 폐해에 대한 조명은 우리 삶에 대입되며 흡인력을 높인다.

‘제1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익숙한 설정인 듯 보이다가도 전형성을 탈피하며 단단한 세계를 힘껏 뚫고 나아가는 인물들의 젊은 에너지가 쾌감을 선사한다. 강경은 기자 free192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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