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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청년? 저희 세대는 길을 잃었어요”

등록 2020-10-09 05:00수정 2020-10-09 20:47

[책&생각] 수준 이하 사회, 기대 이하의 ‘청춘시대’
제니퍼 M. 실바, 쇠퇴한 도시에 사는 ‘흙수저’ 청년 노동자 100명 인터뷰
불안한 노동에 꿈 잃은 그들 통해 ‘안전망 없는 신자유주의’ 문제점 짚어
미국의 한 레스토랑에서 청년이 홀에 음식을 나르고 있다. 책 제목인 ‘커밍 업 쇼트’(coming up short)는 ‘특정 기준이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이란 의미로 쓰이는 숙어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한 레스토랑에서 청년이 홀에 음식을 나르고 있다. 책 제목인 ‘커밍 업 쇼트’(coming up short)는 ‘특정 기준이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이란 의미로 쓰이는 숙어다. 로이터 연합뉴스

커밍 업 쇼트: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제니퍼 M.실바 지음, 문현아·박준규 옮김/리시올·1만8000원.  

<커밍 업 쇼트>는 미국 사회 ‘노동 계급 청년’의 현실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 제니퍼 M. 실바는 산업 쇠퇴로 경제 불안전성이 커진 도시인 로웰과 리치먼드에 주로 거주하는 노동 계급 청년 남녀 100명을 인터뷰(2008년 10월~2010년 2월)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지은이는 ‘아버지가 대학 졸업자가 아닌 경우’를 노동 계급으로 정의했고, 24~34살의 나이에 성별은 반반, 백인과 흑인의 비율은 60 대 40으로 구성해 청년들을 만났다. 책은 과거의 청년 세대와는 다른 경로를 밟는 밀레니얼 노동 계급 청년들이 ‘성인기에 이르는 과정’을 살피는데, 이들의 개별적 목소리가 쌓일수록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문화적 변동이 어떤 구조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교육 과정을 거쳐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양육하는 일들이 현재엔 어느 것 하나 이루기 녹록지 않음을 청년들은 자신의 사례로 증명해낸다. 빡빡한 삶을 사는 부모는 청년들이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아 더 평탄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끌어주기 요원하며, 시기와 기회를 놓친 이들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이 더디다. 대학 교육을 받는다 해도 학자금 대출금과 신용카드로 메꾼 생활비가 빚으로 남는다. 전공을 살려 취업하고 싶어도 노동시장에선 기회의 문이 좁고, 그동안의 교육이 먹고사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느끼며 교육 제도에 배신감을 느낀다. ‘성인이 되었다고 느끼냐’는 물음에 한 청년은 답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남자가 되는 걸까요? 청소년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지금 저희 세대는 길을 잃은 처지예요.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죠.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요.”

‘길을 잃은 처지’의 청년들은 대개 캐셔나 고객 서비스 상담원 등 서비스직에 종사하며 형편없는 임금을 받고, 쉽게 해고될 위험에 처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입대’가 선택지가 된다는 점은 아프게 다가온다. 죽을 수도 있지만, 민간 일자리에 비해 안정적이고 보상 제도를 갖춘 군대가 하나의 기회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특히 군대는 사회에서보다 차별이 덜하다는 점에서 흑인 청년들이 선택하는 길이기도 하다.

불안정한 삶을 사는 청년들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일을 주저한다. ‘그나마 가진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 앞을 막아서기 때문이다. 경제적·사회적 충격을 온전히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시대에는 결혼이 또 하나의 위험으로 인식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안전망 없는 세계’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되지만, 청년들은 고투하며 살아남았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며 의지할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믿음을 쌓아간다. 타인과의 연대보다 짐이 되는 약자에 대해 선을 그으며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공고화한 태도를 보인다.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제도들에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모습에서 이들이 보수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이유를 차근히 짚어보게 된다. 미국 사회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목격되는 현상이기에 이목을 끈다.

제목 ‘커밍 업 쇼트’(coming up short)는 ‘특정 기준이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이란 의미로 쓰이는 숙어인데, 지은이는 “개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제도의 수준미달”을 다루려 했다고 밝혔다. 책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파편화된 개인들에게 “‘우리’라는 감각을 보유”하게 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곱씹어보게 한다.

강경은 기자 free192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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