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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누구나 지칠 때 힘이 되는 ‘명대사’ 한마디 있지 않나요?”

등록 2020-09-20 20:21수정 2020-09-21 02:05

[짬]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

드라마 명대사로 자전에세인 엮어낸 정덕현 평론가가 9월 4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드라마 명대사로 자전에세인 엮어낸 정덕현 평론가가 9월 4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그런 책이 팔립니까?” 올해 초, 출판사가 드라마 명대사 관련 책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그 자신 이렇게 되물었다. 검색만 해도 명대사를 정리해놓은 글이 수두룩한데 굳이 돈을 주고 명대사를 읽을까? 그런 생각으로 쓴 책이 출간 한 달 만에 2쇄를 찍었다. 정덕현(51) 대중문화평론가가 지난달 10일 내놓은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가 그 책이다.

드라마의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겠지만, 이 책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여운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히 명대사를 나열해 놓은 게 아니다. 명대사는 거들뿐 대중문화평론가로 사는 50대 남자의 인생을 담은 에세이집으로 풀어냈다.

지난 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정 평론가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에게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과 경험을 하며 살고 있고, 그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며 “평론가로서 작가와 대중의 연결을 돕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말했다.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42가지 명대사로 엮은 자전에세이
“책 팔릴까 했는데 한달 만에 2쇄 찍어”

국문학 전공 소설가 꿈꾸다 ‘우연히’
2005년부터 드라마 글쓰기 1세대로
“드라마 보며 공감하는 일상이 행복”

사진 가나출판사 제공
사진 가나출판사 제공

책에는 총 42가지 명대사 속에 그의 일생이 녹아 있다. <나의 아저씨> 속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이 됐어요”를 통해 나이 들어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쌈, 마이웨이>의 “나처럼 살지 마라”에선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수저 계급론’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태원 클라쓰>의 “…내 계획은 십오년짜리니까”는 그가 대중문화 관련 칼럼을 쓰게 된 과정을 담아낸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속 “…동맹이니까요. 같이 죽고 같이 사는 겁니다”는 말을 빌려 그가 아들과 게임으로 소통한 사례를 들려주며 “진정으로 소통하려면 동맹 관계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드라마 대사 만으로 한 남자의 평생을 기록하는 게 흥미로운데 그는 “명대사는 작품을 통해 작가와 시대와 대중이 하나로 묶이는 순간 탄생한다”며 “시대의 공기와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명작을 먼저 꼽은 뒤, 누구나 아는 대사보단 그 안에 녹아있는 의미 있는 대사를 추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앞뒤 문맥을 알아야 하기에 이미 본 드라마도 대부분 다시보기를 했단다.

한 해 쏟아지는 드라마만 100개가 넘는 요즘, 적절한 명대사를 찾은 선구안은 평론가로서 그의 평소 노력을 말해준다. 그의 일과는 오롯이 드라마로 채워진다. 밤 9시부터 이튿날 새벽 1시까지 그날 프로그램을 ‘본방사수’하고, 다음날 오전 관련 글을 작성하고, 오후엔 놓친 프로그램을 다시보기한다. “처음에는 기자들이 전화했을 때 ‘못 봤다’는 말을 하기 싫어 닥치는 대로 봤죠.” 하지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오티티·OTT) 등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해졌다. “4회까지 본 뒤 의미 없으면 더 이상 보지 않아요.”

그가 글을 쓰는 방식은 다른 평론가와는 사뭇 다르다. 회별로 평론을 쏟아낸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연속성이 있기 때문에 한 회를 보고 전체를 평가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회별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회는 이렇고, 다음 회는 저렇고….” 부지런히 쓰면서 존재감도 뚜렷해졌다. 그의 책에선 <킹덤> 김은희 작가, <동백꽃 필 무렵> 임상춘 작가, <사랑의 불시착> 박지은 작가 등 인기 작가들의 추천 글이 눈길을 끈다. 평론가가 업계 관계자들과 교감하며 지내는 사례는 흔치 않다. 그는 “사람을 알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작가가 곧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나이가 되어 드라마를 보며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웃었다. 그의 인생 역시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예측불허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를 꿈꿨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소주 회사 홍보팀에서 일하고 1998년 인기를 얻었던 사이버 가수 ‘아담’을 홍보하기도 했지만, 인생은 운명처럼 그를 이 길로 들어서게 했다. “어느 날 지인이 드라마 관련 글을 부탁해 1주일에 한 편씩 쓰다가 이 길에 들어서게 됐어요.” 대중문화평론가라는 말이 어색했던 2005년부터 티브이 프로그램 관련 글을 썼으니, 사실상 1세대인 셈이다.

그는 드라마 시장이 커지면서 평론가의 구실 또한 중요해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케이(K) 콘텐츠가 분야를 아우르며 인기를 얻는 것처럼, 특정 분야가 아니라 전반을 아우르는 평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핫100’ 1위를 하면서 케이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드라마, 영화, 다른 음악 분야까지 전반적으로 올라가요. 평론 역시 그런 문화적 흐름을 아우르며 폭넓게 볼 필요가 있어요.”

그는 최근 유튜브도 시작했다. “인터넷 대화창으로 실시간 대화를 하고, 내용 전개에 의견을 내는 등 한국 시청자만의 특징도 연구해야 한다”는 그는 “평론가는 시청자를 가르치려 들어선 안 된다. 콘텐츠를 즐기는 대중에게 최소한의 가이드를 하는 게 제 몫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지칠 때 힘을 주는 명대사 하나쯤은 갖고 산다”는 그를 지탱하는 명대사는 무엇일까. “계속 달라지지만 요즘은 <동백꽃 필 무렵>의 ‘…우리 엄마야…’에요. 지금 이 순간 모두 다 힘든데, 최후의 보루처럼 위안이 되는 게 바로 ‘엄마’라는 존재니까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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