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외딴 집 외딴 다락방에서
필리파 피어스 글·앤서니 루이스 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논장(2005)
청중으로 가득 찬 무대와 함성을 듣고 있거나 세계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까마득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일상이었지만 다시 그런 날이 올까 싶다. 여러 해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 있다. 영국의 대학도시인 케임브리지 근처 그레이트 셸퍼드라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관광지도 아닌 한적한 마을을 마음에 품은 이유는 내 인생의 동화 중 하나인 필리파 피어스의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가 그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작가인 필리파 피어스와 아버지가 유년기를 보낸 곳이자 동화의 무대가 되었던 킹스밀하우스 정원이 아직 남아 있다. 필리파 피어스는 킹스밀하우스로 돌아와 말년을 보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종종 검색을 하며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언제든 갈 수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당분간 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막연하게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한밤 중 톰의 정원에서>와 공명하는 판타지 <외딴 집 외딴 다락방에서>를 읽어보았다. 이 작품은 말하자면 그리움을 담은 판타지라 할 만하다. 작가가 타계하기 전에 쓴 후기 작품 중 하나이며 분량도 적다. 필리파 피어스가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 자기 안의 어린이를 그리워한 소품이다. 하지만 읽고 나면 여운이 오래간다.
에마는 가족들과 함께 이모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 이모할머니 집에 방이 부족해서 에마는 집 꼭대기의 다락방에서 혼자 자기로 한다. 지금은 결혼해서 뉴질랜드에 사는 할머니의 딸 애니 이모가 썼고 지금도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방이다. 한데 동생이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들었다며 “그 방에서 유령이 나온다”고 놀린다. 그날 밤 에마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만 별일 없이 지나간다. 둘째 날 밤에도 비슷한 느낌을 받지만 알고 보니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었다. 세 번째 밤에 에마는 노란 두 눈을 반짝이는 고양이를 발견한다. 고양이는 에마 발치로 다가왔고 둘은 함께 잠이 든다. 다음날 에마가 고양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고 말하자 엄마는 할머니 집에 고양이는 없다고 한다. 에마는 동생의 말대로 유령을 본 것일까.
뭔가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아닌데, 묘한 긴장감과 신비감이 드는 이야기다. 필리파 피어스는 다락방이라는 아늑하지만 낯선 공간에 일종의 비밀을 숨겨두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에 관해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물론 이 마음을 알려면 나이가 좀 들어야 하지만 말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모든 걸 바꾸어 놓는다. 귀엽고 발랄했던 소녀는 말이 통하지 않는 괴팍한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고양이와 함께 잠이 들던 꼬마는 성인이 되어 멀리 떠나버린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어린 날의 추억, 누군가를 보고 싶은 간절함이다. 이런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늙지 않는다. 도리어 더 지극해진다. 때로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다른 시공간이란 바로 이런 마음이 아닐까. 초등 1∼2학년.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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