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형이상학
윤구병 지음/보리·1만8000원
‘우리말로 철학하기’라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농부철학자’ 윤구병(77) 전 충북대 교수야말로 순우리말을 살려 철학하는 사람이다. 이번에 나온 <꿈꾸는 형이상학>에서 순우리말 낱말이 개념어로 쓰여 형이상학의 집으로 지어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지은이는 철학 전공자들이 입말이 아니라 글말로, 글말 가운데서도 식민지 시대에 일본에서 짜깁기한 한자어로 철학을 익혔다면서, 독일에서 그리스어·라틴어를 익힌 철학자들이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독일어로 옮기는 데 힘쓴 것과 비교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있음, 없음, 것, 힘, 함, 됨, 결, 톨’과 같은 순우리말 낱말을 개념어로 벼려내 자연과 인간을 형이상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길잡이로 삼는다. “파동(wave)을 ‘결’로, 입자(particle)를 ‘톨’로, 입자 가운데 더 깨뜨릴 수 없는 가장 작은 것(미립자 따위)을 ‘티’로 부르자. 제 풀에 움직이는 생명 입자들을 ‘산티’나 ‘산톨’로, (…) 힘이 한데 모여 결과 톨로 탈바꿈하는 응집력을 ‘마디’로 부르자.” 이런 제안에서 우리말을 철학·과학 용어로 바꿔내려는 지은이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기원한 ‘형이상학’은 자연학을 바탕에 두고 그 자연학 전체를 포괄하고 넘어서는 앎, 정신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앎을 지향한다. 지은이도 이 책에서 있음(존재)과 없음(무) 사이에 펼쳐진 모든 것을 아울러 그 본질을 통찰하려고 시도한다. 물리학·생물학·수학의 최신 성과를 활용함과 동시에 동아시아의 음양론까지 불러들여 ‘있음’과 ‘없음’의 본질을 파고들어 간다. 지은이는 없음에서 큰펑(빅뱅)이 일어나 펼쳐진 것이 누리빔(우주 공간)이고 이 우주 공간이 다시 수축하면 없음으로 돌아간다고 본다.
이런 형이상학적 탐구의 마지막은 인간의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지은이는 ‘있는 것’과 ‘있을 것’, ‘없는 것’과 ‘없을 것’을 구분한다. 오래된 나무를 보면 햇빛이 닿지 않는 나뭇가지는 죽어서 삭정이가 된다. 그늘의 잎들이 태양 에너지를 받지 못해 나무 자체의 생존과 성장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나무가 스스로 그 가지를 ‘없을 것’ 곧 ‘없어져야 할 것’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 ‘없을 것’이 군더더기, 걸림돌이다. 그런데 인간세상에는 군더더기와 걸림돌을 일부러 만들어 다른 ‘산이’들을 못살게 함으로써 스스로 살길을 찾는 ‘산이’들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이런 산이들은 특권층, 기득권자, 지배계급 따위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
반면에 ‘있을 것’, 다시 말해 ‘있어야 할 것’은 굶주린 사람에게 밥처럼 꼭 있어야 하는데 아직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있을 것은 ‘빠진 것’이고 ‘채워야 할 것’이고,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있어야 할 것을 있게 하자는 것이 모든 산이들의 바람이고 소망이고 간절한 염원이다. “살아남으려면 산티에서부터 산알(세포), 산톨까지 모두 배를 채워야 한다. 있을 것, 아직 없는 것을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 창조를 통해 진화하는 것이 삶의 벼리다. 살림이다.” 있음과 없음으로 축조된 지은이의 형이상학은 이렇게 우주와 인간을 포괄해 전체를 통찰하고, 그 바탕 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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