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건넜다
김용택 글, 수명 그림/창비·1만800원
“졸업생은 나 혼자다/ 내가 상을 다 탄다/ 학교장 상 김주희/ 교육장 상 김주희/(…)/ 상품은 경운기로 싣고 왔다”(‘졸업식 날’) 군수 상, 면장 상, 우체국장 상, 파출소장 상까지 모든 상을 다 탄 주희가 졸업한 그 산골학교는 잘 있을까.
도시의 소란스런 일상이 멈춘 자리,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이 동시집 <은하수를 건넜다>를 들고 왔다. 총 68편의 시 중에는 절판된 15년 전 시집 <내 똥 내 밥>에 들어 있던 43편도 새롭게 고쳐 써 함께 실렸다. 사십 년 지킨 교단을 떠난 지도 십년을 훌쩍 넘긴 시인은 “어린이들이 없는 마을은 정말 심심하다”면서, 그 심심함이 시가 되었노라고 고백한다. 심심함의 경지는 이렇다. “나는 산이랑 논다/ 나는 나무랑 논다/ 나는 개미랑 논다/ 나는 나비랑 논다/ 나는 비랑 논다/ 나는 별이랑 논다/ 나는 달이랑 논다/ 나는 그렇게 논다”(‘논다’) 적막한 농촌마을에선 다들 그렇다. 할머니는 곡식이나 짐승에게 말을 한다. 참깨를 일으키며 “아이고고 어쩌끄나”, 콩밭 따라오는 개에게 “어여, 집에 가”(‘할머니는’). 자연과 놀 줄 아는 그들은 사실 심심할 틈 없다.
날아가는 나비를 가만히 바라보면 ‘착해지는 내 마음’이, 작은 생명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시집에 그득하다. “새잎 피는 뒷산 느티나무 그림자가 또렷”한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새(‘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라고, 연필 끝에 내려앉은 잠자리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참으로 이상한 일’), 민달팽이 구조작전을 펴고도 ‘내가 잘했을까요?’ 자문한다.
뭐니뭐니 해도 아이들과의 일상과 사랑이 담뿍 든 시들을 빼놓을 수 없다. 숙제를 아차 하고 잊은 아이에게 ‘박앗차’, 숙제를 깜박 잊은 아이에겐 ‘임깜박’. 선생님이 불러주는 ‘별명’만으로 교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숙제가 대수랴. 국영수보다 귀한 자운영꽃을 배웠으면 됐다.
“학교 갈 때 몰랐는데/ 집에 올 때/ 자운영꽃/ 피어 있다/ 오늘 선생님이/ 자운영꽃을/ 알려 주셨다”(‘자운영꽃’)
권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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