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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헤세가 휘청이며 걸었던 , 나를 찾는 길

등록 2020-07-31 05:00수정 2020-07-31 16:49

정여울 작가가 유럽서 찾은 헤르만 헤세의 흔적
“그를 향한 모든 길이 나를 향해 걷는 길이었다”

헤세: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정여울 지음/아르테·1만8800원

“헤세는 자신의 이중성을 알고 있었다. 머물다 보면 떠나고 싶고, 방랑하다 보면 정착하고 싶어지는 (…) 그는 인생의 양극단 사이를 불규칙하게 오가며 불안하게 흔들리는 삶의 묘미를 알았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부단히 휘청거리는 삶.”

<헤세×정여울>(아르테 클래식클라우드 22)은 자잘한 ‘지그재그’ 같았던 헤르만 헤세(1877~1962)의 발자취를 ‘헤세 덕후’ 정여울이 따라 걸은 기록이다. 정여울은 헤세가 머물렀던 독일의 칼프·가이엔호펜, 스위스의 몬타뇰라를 찾아 그가 거닐었던 산책길을 걷고, 그가 쉬어가던 의자에 앉아본다. 헤세의 공간에 발을 디디며 시작된 이 여정은 그의 ‘정서적·문학적 자취’를 따라 걷는 일로 확장된다. 헤세의 작품이 마치 “해가 없는 진정제” 같아 힘겨울 때 수시로 그의 책을 펼쳤다고 고백하는 정여울은, 헤세의 삶과 작품을 교차시키며 헤세가 ‘자유’와 ‘안정’ 사이를 갈지(之)자로 걸으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으로 향했던 길을 독자에게 안내한다.

헤세가 마지막 40년을 보냈던 스위스 몬타뇰라의 골목길. 사진 이승원
헤세가 마지막 40년을 보냈던 스위스 몬타뇰라의 골목길. 사진 이승원

두 번의 퇴학과 이혼, 세 번의 결혼과 조국 독일에서 출판 금지, 우울증 같은 수식어가 말해주듯, 헤세의 삶은 곧게 뻗어나가지 않았다. 특히 마흔 즈음에 크게 한 번 휘청였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조국에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고, 아버지를 잃었으며, 아내와 아들은 심하게 아팠다. 이때 헤세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 베른하르트 랑에게 60번이 넘는 상담 치료를 받는다. 이후 스위스 몬타뇰라로 이주해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삶’이라는 새 길도 낸다. “나이 마흔에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헤세는 그 일을 해냈다. (…) 다른 사람의 길과 나의 길을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헤세의 눈부신 재능이었다.”

헤세의 무덤이 있는 스위스 몬타뇰라 아본디오 교회 묘지. 멀리 알프스의 산자락이 헤세의 무덤을 감싸고 있다. 사진 이승원
헤세의 무덤이 있는 스위스 몬타뇰라 아본디오 교회 묘지. 멀리 알프스의 산자락이 헤세의 무덤을 감싸고 있다. 사진 이승원

이렇게 혹독한 마흔을 통과한 이후 나온 작품이 바로 <데미안>이다. 정여울은 이 작품 이후 헤세의 작품 세계에 변화가 감지됐다고 말한다. <데미안> 이전의 헤세가 “분명 아름답고 재능 있는 문장을 쓰지만 뚜렷한 세계관을 보이지 않았다”면 “이후 (작품 속 주인공들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끝없는 탐구, 세상이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한 새로운 싸움, ‘개성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개성화’는 ‘사회화’와 “정반대로 작동하는 성장의 힘”이다.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학습하는 과정이 사회화라면, 개성화는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깨닫고 지켜 자신의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이다. 사회적 가치·규범의 강력한 자장 앞에서 개인의 고유성은 힘없이 휘어지곤 하기에 개성화의 길을 걷는 것은 “공동체로 내달리려는 충동과 싸우는” 일의 연속이지만, 종교·정당 등 그 어떤 조직에도 거리를 뒀던 헤세와 하리 할러(<황야의 이리>의 주인공으로 사회화를 격렬히 거부한다) 같은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비틀거리면서도 끝내 개성화의 길을 간다. 헤세는 산문에서 “자기 존엄성의 근거를 (…) ‘자기 안의 철학’에서 찾는다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어쩌면 지그재그로 난 헤세의 발자국은 사회에 포섭되지 않으려 예술과 철학의 힘으로 버텼던 ‘저항의 흔적’이 아니었을까. 독일·스위스의 소담한 풍경 사진, 누구나 그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게 만드는 정여울 특유의 내밀한 문장 덕에 휴가철 동행하기 좋은 책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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