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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말더듬증 소년은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등록 2020-07-31 05:00수정 2020-07-31 10:11

내가 말하고 있잖아
정용준 지음/민음사·1만3000원

정용준(사진)의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의 주인공은 말더듬이 증세로 언어 교정원에 다니는 열네 살 소년이다. “넌 왜 사냐? 쓸모없고 말도 못 하고 친구도 없고 늘 괴롭힘만 당하잖아. 왜 살아?” 한 친구가 진지하게 물어볼 정도로 소년의 삶은 엉망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알코올중독자인 엄마는 형편없는 남자들에게 매달리며 “떠나지만 말라고 구걸하고 또 구걸하는 사랑 거지다.”

학교에도 집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소년을 받아 준 곳이 스프링 언어 교정원. 이곳에서 소년이 처음 마주친 ‘동료’들은 “정상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망가져 보인다. “그러니까 여긴 고장 난 사람들만 모아 둔 창고 같은 곳일까?”

그러나 남들 앞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해서 지력이 떨어지거나 할 말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따돌리는 이들을 향해 소년이 하는 속엣말을 들어보라. “바보들아. 나는 기억의 천재다. (…) 나는 더러운 가로수처럼 너희들 곁에 서 있지만 너희들이 한 말을 다 기억하고 있단 말이다.”

소설은 이렇듯 열악하고 불리한 상황에서 언어 교정원에 다니기 시작한 소년이 결국 말더듬증을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소설 말미에서 한 친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너 진짜 말 잘한다. 너처럼 말 잘하는 사람 처음 봐.” 이런 기적과도 같은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던가.

“이해하는 척하면서 정작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잖아. 말뿐이잖아. 결국 다 그렇잖아.”

처음 교정원에 갔던 날, 자신을 반기고 격려하는 동료들과 원장을 보며 소년은 이렇게 비딱한 마음을 먹는다. 말더듬증과 더불어 살아온 세월이 그를 그렇듯 뒤틀리게 만들었다. 동료들과 같이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 주거나 지나가는 이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지하철 역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스피치’ 훈련 등을 거치면서―때로는 좌절하기도 하면서― 소년은 차츰 두려움을 이겨내고 입을 열 수 있게 된다. 특히 그 자신 외과의사이면서 교정원에 다니는 ‘처방전’ 이모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마음이 어둡고 답답할 때, 괴롭고 어떤 것도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노트를 펼쳐서 뭐든 써. 그러면 금방 마음이 편안해진단다.” 반신반의하며 기록하기 시작한 노트가 어느새 글씨로 가득하고, “그것은 마치 입술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가둬 둔 감옥 같았다.” 기록을 통해 말더듬증을 극복하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문학과 작가의 탄생기로도 읽힌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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