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길렌·장 자미트 지음, 박성진 옮김/사회평론아카데미·2만8000원 선사시대의 인류는 어떻게 살았을까.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선사 인류가 대체로 평화롭게 살았으며 도시 국가가 형성된 뒤에야 전쟁이 일상화했다는 것이 고고학계의 정설이었다. 기독교의 창세기 에덴동산 신화나 마르크스주의의 원시공산주의 가설에 영향을 받은 탓이었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와 선사시대를 바라보는 고고학계의 눈은 크게 바뀌었다. 선사시대 인류에게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는 주장이 세를 얻은 것이다. 프랑스의 고고학자 장 길렌과 장 자미트가 함께 쓴 <전쟁 고고학>은 선사시대 이미지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데 선도적인 구실을 한 책이다. 2001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은 구석기 말기와 신석기시대의 유적에서 전쟁과 폭력의 흔적을 꼼꼼히 추적해 간다. 공동저자인 길렌은 고고학의 권위자이고 자미트는 의사로서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지은이들은 선사시대 유적, 특히 인골을 의학적으로 정밀하게 검사해 석기에 벤 자국이 있는 뼈, 망치 같은 도구에 맞은 뼈, 화살촉이 박힌 뼈를 찾아낸다. 인골 중에는 머리와 분리돼 몸만 남은 것도 있다. 화살촉이 박힌 방향으로 화살을 앉아서 쐈는지 위에서 내려다보며 쏘았는지까지 알아낸다. 지은이들의 연구를 통해 선사시대에 집단학살, 무력충돌, 식인, 희생, 처형이 빈발했음이 드러난다. 아프리카 수단의 북부에서 발굴된 ‘제벨 사하바 공동묘지 유적’은 기원전 1만년 무렵의 말기 구석기 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서 다량의 남녀노소 인골이 발견됐다. 이 인골들은 머리뼈가 없는 것이 다수여서 집단학살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신석기시대에 처형되거나 희생된 피해자들 가운데 여성과 아이의 비중이 유난히 높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도나우강 저지대 ‘흐루쇼바 유적지’에서는 광주리에 담겨 생매장당한 두 아이의 뼈가 발견되기도 했다. 희생 제의의 피해자로 보이는 이 아이들은 장애인 또는 기형아였다. 신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희생제물이 된 것으로 지은이들은 해석한다. 이 책에는 고고학자 로런스 킬리가 <원시전쟁>에서 사용한 전쟁 사망자 비율 도표도 인용한다. 이 도표를 보면 국가 형성 이전의 원시 사회에서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비율은 적게는 10%대에서 많게는 30%대에 이른다. 반면에 17세기 서유럽의 전쟁에서 살해당한 사람은 총인구의 2%에 지나지 않았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전쟁과 폭력으로 더 많이 죽었다는 얘기다. 수렵·채집 시대에 폭력과 전쟁이 이렇게 많았다면, 사회계약 이전의 인간은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았다는 루소의 주장보다는 자연상태는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늑대인 전쟁상태와 다르지 않다는 홉스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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