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영화의 맛
이주익 지음/계단·1만6500원
역마살이 낀 한 미식가는 음식을 좋아하고 영화를 무엇보다 사랑한다고 했다. 이에 더해 음식과 영화에 “참으로 고맙다”고 했다. 외국의 영화인들과 협업하며 <만추> <워리어스 웨이> 등을 만든 영화제작자 이주익이 <불현듯, 영화의 맛>을 펴내며 내보인 진심이다. 영화에서 무언가를 암시하는 데 쓰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는 소품이 되기도 하는 음식에 초점을 맞춘 그는 다기한 이야기로 소담한 한 상을 차려냈다. ‘새벽 국밥집에서 옛날 영화를 떠올리다’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그가 풀어낸 이야기들은 촐촐할 때 만난 야식 같은 반가움을 느끼게 해준다.
<변호인>과 국밥, <황해>와 감자, <인터스텔라>와 옥수수, <바베트의 만찬>과 프랑스 요리, <포레스트 검프>와 초콜릿 등이 실타래가 되어 한국, 아시아, 미국, 유럽, 남미 등 세계의 식문화와 산업, 생활사에 대한 조망으로 나아간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한 장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채만식의 <금의 정열> 같은 소설에 등장한 ‘설렁탕’으로 이어지며 지나온 시간 속 음식의 의미를 담백하게 음미한다. 만두나 수제비처럼 비슷하면서도 나라마다 재료와 조리 방식을 달리해 제각각 발전해온 음식들을 살필 땐 인류의 보편성과 개별성에 대해 ‘불현듯’ 생각해보게 하며, 각광받는 음식들의 산업 이면의 비윤리적 문제를 짚을 땐 먹는 행위와 관련된 태도나 입장에 대해서 고려해보게 한다.
‘줌 인’과 ‘줌 아웃’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세상 곳곳에 닿은 지은이의 관심과 체험은 “토렴”(뚝배기에 밥을 담고 뜨거운 국물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넣는 것)을 해 금세 식지 않는 따끈한 국밥처럼 ‘시원한’ 인상을 남긴다.
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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