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나눈 사적인 대화를 소설에 무단으로 인용해 물의를 빚은 작가 김봉곤이 ‘젊은작가상’ 반납 의사를 밝혔다. 출판사 문학동네와 창비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그의 소설집을 환불해주기로 결정했다.
김봉곤은 21일 오전 트위터에 글을 올려 “그간의 모든 일에 대해 사죄드린다”며 젊은작가상을 반납하고 자신의 두 소설집 <여름, 스피드>와 <시절과 기분>을 판매 중지한다고 밝혔다. 트위터 이용자명 ‘다이섹슈얼’이 김봉곤의 소설에 자신이 작가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문자가 여과 없이 들어가 있다며 문제 제기를 한 지 10여일 만이다.
자신을 출판 편집자라고 밝힌 ‘다이섹슈얼’은 지난 10일 김봉곤의 단편 ‘그런 생활’에 자신이 작가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며 작가의 사과와 함께 ‘젊은작가상’ 수상 취소 등을 요구했다. 이 요구에 김봉곤이 즉각 응하지 않으며 의견문으로 해명을 시도하고, 젊은작가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문학동네 역시 수상 취소 요구를 거부하자 독자들과 몇몇 작가들을 중심으로 김봉곤과 문학동네 그리고 김봉곤의 소설집을 출간한 창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어 자신을 김봉곤의 첫 소설집 표제작인 단편 ‘여름, 스피드’의 등장인물이라고 밝힌 이가 17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김봉곤이 자신의 문자 역시 허락 없이 소설에 인용했으며 그 때문에 강제로 자신의 성 정체성이 까발려지는 ‘아우팅’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봉곤은 해당 사실을 인정했고, 문학동네와 창비는 김봉곤의 두 소설집과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판매 중지를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와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출판지부 등이 항의 성명을 냈고, 몇몇 작가와 독자, 서점인 등의 문학동네·창비 보이콧 움직임도 불거졌다.
소설집과 수상작품집 판매 중지와 김봉곤 작가의 젊은작가상 반납 선언으로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이번 사태는 소설 창작과 사생활 침해의 관계를 둘러싸고 적잖은 과제를 남겼다. ‘커밍아웃 한 게이 소설가’로 자신을 설명해온 김봉곤은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중편 ‘Auto’(오토)에서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전적으로 나에 기대어, 나를 재료 삼아 쓰는 글쓰기, 나를 모르는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 배타성, 그 배타적임으로 생기는 내밀함을 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Auto’) 일본의 사소설을 연상시키는 이런 창작 방법은 불가피하게 주변 인물들의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을 수반한다. 그는 “나를 모르는 사람은 배려하지 않는 배타성”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번 사태는 작가가 매우 잘 아는 지인들의 사생활을 배려하지 않은 데서 비롯했다. 김봉곤은 21일 올린 사과문에서 “부주의한 글쓰기가 가져온 폭력과 피해” “고유의 삶과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채 타인을 들여놓은 제 글쓰기의 문제점”을 반성한다며 두 피해자와 독자 및 출판 관계자, 동료 작가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작가의 성찰과 함께, 문학과 사생활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단 안팎의 진지한 토론 역시 필요해 보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김봉곤의 단편 ‘그런 생활’을 수상작으로 뽑은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김봉곤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문학동네).
김봉곤의 단편 ‘그런 생활’이 수록된 소설집 <시절과 기분>(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