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다르고 어 다르다>의 지은이 김철호씨는 “사람의 이름이든 사물의 이름이든, 모든 말에는 역사가 있다”라며 “‘말의 역사’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일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강력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 자료 사진
언 다르고 어 다르다
김철호 지음/돌베개·1만5800원
코로나 시대 여러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말 중 하나가 언택트(Untact), 바로 비대면(非對面)이다. 비대면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대면의 ‘면’은 얼굴을 의미한다. 얼굴을 뜻하는 한자어는 ‘면’ 말고도 안(顔), 용(容), 모(貌)가 있는데 왜 비대안, 비대용도 아니고 비대면이 됐을까.
그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 <언 다르고 어 다르다>이다. 책은 한자 의미소로 된 낱말의 예를 들어 미묘한 차이를 톺아본다. 책의 설명을 보면, 선비·훌륭하다·크다 등을 뜻하는 ‘착한 선비 언’(彦) 자와 ‘머리 혈’(頁)이 만난 글자 ‘안’(顔)은 인간의 ‘내면’을 나타내고, 사람의 얼굴 윤곽을 본뜬 ‘면’(面)은 사람의 ‘외면’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잘못을 뉘우치는 얼굴은 ‘회안’이라 하고 아는 얼굴은 ‘구면’이라 한다. 인정 없어 보이는 차가운 얼굴은 ‘빙안’이고 잘 아는 얼굴은 ‘숙면’
이라 일컫는다.
<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2006), <국어독립만세>(2008) 등을 펴낸 ‘우리말 고수’인 지은이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신체, 안면, 수면, 연애 등 16개의 표제어와 그로부터 파생된 69개의 의미소에 딸린 낱말과 표현을 자세히 설명한다. 가령, ‘슬플 비’(悲)와 ‘슬플 애’(哀)가 만난 ‘비애’는 인간이 겪는 온갖 슬픔을 압축한 말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다양한 슬픔의 단어가 있다. 슬프고 상한 마음은 ‘애상’(哀傷)이라고 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부득이 헤어지게 되는 슬픈 사랑은 ‘비련’(悲戀) 또는 ‘애련’(哀戀)이다.
낱말의 유래에 관한 창의적 해석도 흥미롭다. 반대말인 ‘거짓’과 ‘참’의 경우, 속이 비었으냐 찼느냐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거짓은 ‘가죽’ ‘거죽’ ‘겉’에서 나온 말이고 참은 (속이) ‘차다’의 명사형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 하는 속담이나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하는 옛 시조 구절에서 보듯이 겉과 속은 짝을 이루는 말이다. 이들은 ‘껍데기’와 ‘알맹이’의 관계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속이 들어찬 것이 참이고 속이 들어차지 않고 겉이나 거죽이나 가죽만 있는 것은 모두 거짓이다.
지은이는 말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인수분해 학습법’을 소개한다. 이 학습법은 낱말의 의미소를 쪼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발소리만 들릴 때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발자국’
을 의미소로 나누면 ‘발’과 ‘자국’이 된다. 이것은 발이 남긴 시각적인 흔적이다. 그러니 ‘발자국 소리’가 아닌 ‘발소리’로 써야 한다. 또 다른 예를 살펴보면, ‘피해’를 한덩어리로 뭉뚱그려 이해하지 않고 ‘해를’ ‘입는다’로 쪼갠다. 그러면 ‘피의자’라는 말을 ‘의심을’ ‘받는’ ‘사람’으로 분석할 수 있다.
지은이는 말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문장력과 표현력 강화를 넘어 생각을 담는 그릇인 언어를 통한 자기 성찰에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에필로그에 있는 이 문장을 곱씹기를 권한다. “자신의 언어를 자각하는 일, 자신의 말과 글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말은 단지 말이 아니다. 말을 정밀하게 살펴야 하는 까닭은, 말 속에 우리 자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