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가 밤마다 전화로 업무지시를 하는데, 종종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게 욕을 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회사 간부가 자신의 대학원 논문을 위한 영어 번역을 시킨 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상한 업무를 자꾸 시켜 이를 대표이사한테 얘기했더니 되레 나를 이상한 부서로 발령낸다.
1년 전만 해도 이런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을 당한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조처는 거의 없었다. 이는 기존 노동법체계의 사각지대였다. 지금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구현된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기대어 회사에 시정을 요구하고 노동청에 처벌을 요구하는 한편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변화는 행정부와 국회, 사법부가 만들지 않았다. <직장갑질에서 살아남기> 저자인 노동운동가 박점규와 140여명에 이르는 변호사, 노무사, 노동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노동단체 ‘직장갑질119’가 주춧돌을 놓았다.
<직장갑질에서 살아남기>는 2년 넘는 기간 동안 직장 갑질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동자들이 벌인 저항과 함께 직장갑질119가 벌인 투쟁의 기록이다. 입사부터 임금, 노동시간과 휴가, 조직문화를 비롯해 퇴사에 이르기까지 통상의 직장생활 과정 곳곳에 웅크린 온갖 갑질의 유형을 20년 노동운동 경력의 저자가 정리해 보여주고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에는 거대 담론 따위는 없다. 대신 직장 상사와 조직이 강요하는 부당한 현실에 맞닥뜨린 직장인과 직장인 지망생들한테 요긴한 실전 비법과 지식이 가득하다. 이 책은 갑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을’들을 위한 ‘구명조끼 사용설명서’다.
전종휘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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