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직전 북한사와 전후 지역사 등 다양한 관련서적 출간
전쟁사 시야 넓히고, 내용도 ‘전투’에서 ‘일상’으로 확장해 ‘눈길’
전쟁사 시야 넓히고, 내용도 ‘전투’에서 ‘일상’으로 확장해 ‘눈길’
한 소년병이 철모에 진달래 꽃을 꽂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 존 리치
김재웅 지음/푸른역사·2만5000원 <고백하는 사람들>은 남과 북이 서로 총구를 겨누기 이전, 북한은 어떤 사회였는지 879 조각의 퍼즐로 복원했다. 여기서 퍼즐은 879명의 인민이 북한 정권에 제출한 ‘자서전·이력서’다. 해방 직후 북한은 인민을 통제하기 위해 공직자, 교원, 노동당원 등 소위 ‘식자층’으로부터 자서전과 이력서를 제출 받았는데, 책은 이 자료를 한 땀 한 땀 모아 당시 북한 사회상을 그려낸다. 한국전쟁 때 미군이 노획한 이 기록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수장고에서 60년 동안 잠자고 있었고, 10년 전 국립중앙도서관의 자료공개를 통해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문서를 처음 접한 지은이 김재웅은 “평소보다 심장 박동이 두 배 빨라지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책은 해방을 맞은 북한의 표정이 어땠는지, 북한에서 일제 잔재 청산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토지개혁에 대한 인민들의 진짜 평가는 어떠했는지 등을 주로 다뤘다. “10년 가까이 일제의 교육을 받아 일본인이 돼가고 있어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슬프고도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혔다”던 함흥 여자 중학생 김경옥의 고백, 일본 장교로부터 “너희들은 일본과 같은 썩어빠진 군대를 건립해서는 안 된다, 돌아가거든 조국의 훌륭한 간부가 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들었다던 청년 장치원의 고백 등을 접하다보면 납작하게 눌려 있던 역사가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소련군이 황해도 송화군에 진주했을 때, 공산청년동맹과 적위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주민들을 피신시켰을 정도로 소련군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거나, 국가 재건을 위해 식자층을 확보해야 한다는 미명 아래 ‘친일 가담 정도가 경미한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대목은 대중이 지닌 북한 인민에 대한 인식과는 달라 흥미롭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토지개혁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진짜 평가’다. 북한은 1946년 소작지를 몰수하는 ‘토지개혁법’을 시행했는데, 이 법은 가정 내 부자(父子) 간 ‘사상 갈등’을 불러왔다. “그와 부모의 사상적 간극은 마치 ‘물과 불의 관계’ 같았다. 노동당원이자 평양공대 교수인 그는 토지개혁을 적극 지지한 반면, 재산을 몰수당한 뒤 축출된 그의 부모는 토지개혁에 이를 갈며 체제를 증오했다.” 북한 당국의 검열 탓에 자서전·이력서에 허위나 누락이 끼어들 개연성이 있으나 너무도 생생한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보존된데다 879명의 삶을 지은이가 교차 검증했다는 점에서, 개별 퍼즐의 불완전성이 큰 그림을 크게 왜곡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신기철 지음/역사만들기·1만8000원 <한국전쟁, 전장의 기억과 목소리>는 옹진군 주민 104명의 한국전쟁 전후 10여년의 기억을 엮은 책이다. 전쟁범죄를 규명하기 위해 민간인 구술 기록 작업을 해온 지은이 신기철이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국군에 차례로 점령됐던 ‘옹진군’에 주목했다. 옹진군에 전쟁은 일찍 와서 늦게 떠났다. 한국전쟁 발발 전, 이미 옹진에서는 국지전이지만 국군과 인민군 사이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고 그때마다 ‘노무부대’로 동원된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 전부터 옹진에서는 전투가 컸거든. (…) 군인보다 우리가 더 죽었어. 군인들은 싸우다 죽는다지만 우리는 맨몸에 밥 가지고 가다 많이 죽었어요.”(구술인 심세기) 무장도 못한 채 밥을 나르던 민간인들은 박격포를 맞아 죽어도 보상받지 못했다. 민간인 피해는 본격적인 한국전쟁 중에도 이어졌다. 1950년 7월1일 북한군 1중대가 연평도에 상륙하면서 인민군 점령 정치가 시작됐다. 국군에 강제동원됐던 민간인은 이번에는 인민군에 강제동원돼 미군 폭격에 대비한 방공호를 팠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후퇴하던 인민군이 백령을 탈출하기 위해 강제로 민간 어선을 동원하려다 이를 저지하던 청년 사공을 죽이는 일도 있었다. 국군이 인민군 점령지를 회복한 후에는 인민군에 협력한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이 총살됐다. 지은이는 “비무장 민간인은 적법한 재판 절차를 통해 법의 판단을 받아야 했음에도 그런 과정이 없었다”며 “군과 경찰에 의해 치러진 옹진군 민간인 학살에 대해 정부는 사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호 지음/섬앤섬·1만9000원 <한국전쟁: 전쟁을 불러온 것들 전쟁이 불러온 것들>은 한미관계사·한국전쟁사를 연구해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 연구원 이상호가 쓴 논문 10건을 엮은 책이다. 이 가운데 현재적으로 읽히는 부분은 8장 맥아더사령부의 ‘삐라 선전 정책’이다. 한국전쟁 발발 나흘 만에 등장한 삐라는 전세에 따라 내용도 규모도 바뀌었다.
ⓒ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존 리치 지음/서울셀렉션·2만원 <1950: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집>은 미국 종군기자 존 리치(1917∼2014)의 사진집이다. 그는 통신사 소속 펜 기자였는데,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다 우연히 카메라와 컬러 필름을 얻어 한국전쟁 속 피난민, 포로, 군인의 모습은 물론 이승만 전 대통령과 맥아더사령관 모습까지 포착했다. 그가 찍은 컬러슬라이드는 일본식 차 상자에 보관돼 있다가 50년 만에 ‘발견’돼 세상에 공개됐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 맞은 서울 전경부터 시장 풍경, 국군의 표정까지 ‘줌인’과 ‘줌아웃’을 넘나든 사진들이 다채롭다.
한국전쟁 때 부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미군 병사들이 우물 옆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고 주민들이 이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다. ⓒ 존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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