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자본주의
닉 서르닉 지음, 심성보 옮김/킹콩북·1만3000원
바야흐로 플랫폼 기업의 시대다. 코로나19 대유행기에 많은 사람들이 주식시장에서 넷플릭스나 화상회의 플랫폼 줌 같은 ‘언택트’(비대면) 소비 기업 주식을 사들였다. 20년 뒤인 2040년이 되면 미국 상장기업 이익에서 애플,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도 넘을 거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우버, 에어비엔비처럼 막대한 데이터를 독점하고 추출, 분석, 활용하는 플랫폼 기업은 오늘날 자본주의 이윤을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 행위자가 되었다. 하지만 ‘21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사업모델인 플랫폼에 실제로 올라 타서 거래하고 소비하며 시장을 지탱하는 사람들은 정작 이용자, 소비자, 노동자, 광고주 같은 ‘일개미’들이다. 막대한 투자금과 데이터, 그리고 네트워크까지 거저먹으며 앉은 자리에서 돈을 버는 플랫폼은 독일까, 약일까?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를 거부하는 것이 차라리 안전할까? 아니면 잘 훈련시켜 길을 들여가며 함께할 것인가?
<플랫폼 자본주의>는 페이스북, 구글, 우버 같은 플랫폼 비즈니스를 분석하고 독점을 향해가는 모델을 분석하며 앞으로 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페이스북은 쇼핑 등을 연결해 자신만의 생태계에 소비자를 가둬놓고 구글이나 아마존과 경쟁한다. 로이터 연합뉴스
<플랫폼 자본주의>(영어판 2017) 지은이 닉 서르닉은 영국 런던대학 킹스칼리지에서 정치경제학을 기반으로 디지털 경제와 신기술, 대안 정치를 가르치는 캐나다 출신의 ‘천재’ 학자다. 심리학, 철학, 경제학, 정치학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학문적 성과를 고스란히 반영한 이 책은 불과 35살의 나이에 쓰였다. 그는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말을 제안한 장본인이었고 이 책은 출간 직후부터 플랫폼 비즈니스의 미래를 날카롭게 분석한다는 고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먼저 책을 읽은 엘리트 좌파 독자들 사이에선 기대만큼 날카롭지는 않았다는 소감이 나오기도 했다. 디지털 기술이 창출한 ‘새로운 착취와 약탈의 세계’를 더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는 볼멘 소리였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성장의 장밋빛 미래와 노동 착취라는 잿빛 전망 양쪽 모두 거부하고 있는 이 책은 어찌 보면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21세기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책의 의의가 사라지지 않는다. 지은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적극적인 규제 정책을 만들고 공공 플랫폼을 개발하는 등 ‘자동화된 민주적 플랫폼’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기획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닉 서르닉은 “플랫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철저히 인식해야”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책은 플랫폼 자본주의 구조를 해설하는 설명서로, 오래 곁에 두고 여러번 꼼꼼하게 볼수록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앞 부분에선 1970년대 장기침체와 1990년대의 호황과 붕괴,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까지 세가지 계기를 중심으로 오늘날 플랫폼 자본주의의 생성 과정을 검토한다. 이윤이 장기 하락하고 제조업이 부진에 빠진 뒤 자본주의는 성장을 회복하려고 애썼다. 닷컴 거품 덕에 오히려 초고속 통신망이 깔렸고 기술과 벤처에 대한 투자 과열 때문에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에 막대한 자금이 집중되었다. 책 뒷부분은 플랫폼 유형을 다섯가지로 구분해 설명하는데,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광고 플랫폼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처럼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대여하는 클라우드 플랫폼 △제너럴일렉트릭(GE)과 지멘스처럼 스마트공장부터 물류까지, 전통적인 제조업이 변화한 산업 플랫폼 △자동차 같은 제품을 빌려주는 제품 플랫폼 △청소, 장보기 등 서비스를 주문하는 린(lean) 플랫폼이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공통적인 특징은 풍부한 금융자본, 노동의 외주화, 데이터와 네트워크의 효과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노동의 외주화 부분을 보면, 플랫폼 자본주의의 독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플랫폼 노동자를 ‘디지털 특수고용자’로 분류하듯 미국에서도 플랫폼 노동자는 ‘독립계약자’가 되는데, 노동자는 조직 내부 인사평가가 아니라 평판으로 통제된다. 한국의 경우 애프터서비스나 설치서비스의 댓글이나 평가를 요구하는 시스템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평판 체계가 “젠더화되고 인종차별적이며 사회적 편견에 취약”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노동자를 감시하는 인권의 문제도 있다. 우버는 운전자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심지어 중국에서는 운전자가 시위에 가는지 아닌지까지 관찰한다고 한다. 노동이 값싼 곳으로 이전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콘텐츠 관리는 대부분 필리핀에서 이뤄져 약 10만여 명의 직원이 소셜미디어와 클라우드 저장소에서 검색 관리를 하고 있다. 아마존의 창고직은 저임금으로 악명 높다. 고숙련 핵심 노동자만 높은 임금을 갖는 것이다.
‘21세기 자본주의’의 추진 원료가 되는 ‘데이터’ 또한 핵심적으로 분석한다. 데이터가 많이 쌓일수록 수익이 생기기 때문에 시장에서 경쟁과 독점은 필연적이어서, 아마존은 2018년 미국 전자상거래 절반을 차지했고 구글은 검색엔진의 88%를 차지했다. 지은이는 앞으로 독점적인 플랫폼이 경제 전체로 확대되고 경쟁은 더할 것으로 본다. 광고 수익에 기대는 플랫폼은 점점 직접 요금 사업을 궁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다면 노동자나 소비자 같은 ‘일개미들’에게 기회가 생길 것인가? 지은이는 책 말미에 문제점을 타개할 대안을 짤막하게나마 제시한다. 국가가 필요한 규제력을 발휘하고 공공 플랫폼 기술 개발에 투자하면서 이를 탈자본주의적 플랫폼으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플랫폼은 데이터를 수집해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고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며 기술을 촉진하는 데 사용한다.”
본문만 총 130쪽 가까운 얇은 책이지만 내용의 무게가 만만찮다. 정치경제학과 플랫폼 자본주의를 연결시켜 이해하는 데는 옮긴이 심성보 킹콩랩 연구원의 긴 후기가 큰 도움이 된다. 그는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이 책은 지은이가 가진 기술 유토피아주의자의 관점을 반영해 플랫폼 자본주의를 비판하거나 찬양하는 양쪽에 모두 거리를 둔다”며 “지은이가 제안하듯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국가의 행정과 감시, 자본의 이윤에서 기술을 떼내 공적 플랫폼 개발에 사용한다면 이런 기술적 하부구조를 조건으로 한 새로운 기획이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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