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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호르몬, 이의 있습니다!

등록 2020-05-15 06:00수정 2020-05-15 09:16

생리전증후군·산후우울증·갱년기…생애주기별 여성 뇌·호르몬 연구
‘피임약 먹으면 우울증 걸린다’ 등 여성호르몬 둘러싼 통념에 ‘반론’

여자, 뇌, 호르몬
사라 매케이 지음, 김소정 옮김/갈매나무·1만9000원

수능 시험 전날, 생리가 터질까 봐 밤잠을 설쳤다. 애인에게 언성을 높인 후엔 혹시나 피엠에스(PMS·생리전 증후군) 때문에 엉뚱한 화를 낸 건 아닐까 생리 주기를 따져봤다. 여성호르몬이 언제 어떻게 인생을 훼방 놓을지 몰라 늘 불안했다. 비굴한 신하처럼 평생 호르몬의 눈치를 봤다. <여자, 뇌, 호르몬>은 적지 않은 여성이 겪고 있는 이런 과도한 ‘호르몬 눈치 보기’에 제동을 건다. 오스트레일리아 신경과학자인 지은이 사라 매케이는 여성호르몬을 주제로 진행된 전 세계 연구결과를 토대로 여성호르몬이 그동안 받아왔던 ‘악명’의 실체를 따져본다.

사안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여성호르몬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었다는 게 지은이의 입장이다. 단적인 예가 피엠에스다. 생리 시작 일주일 전 시작되는 불안·짜증·몽롱함·아랫배 통증 등을 통칭하는 이 증후군은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불명예를 씌우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다른 의견을 소개한다. 2012년 뉴질랜드 오타고대학교에서 생리주기와 기분의 관계를 주제로 한 47건의 연구를 종합했는데 생리주기가 기분 변화를 유발한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긍정적 감정에 대해선 묻지 않고 ‘월경 때 부정적 감정을 느끼냐’고만 묻는 방식도 불완전한 결과를 도출하는 데 한몫한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피임약이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통념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16년 덴마크 연구팀이 15∼34살까지 여성 100만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더니 피임약을 복용한 뒤 항우울제를 처방받을 ‘상대위험도’는 23%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를 ‘절대위험도’로 다시 살펴보면 피임약 복용자의 항우울제 처방 위험도는 2.1%, 피임약 비복용자의 위험도는 1.7%로 “(100명을 기준으로 보면) 피임약 먹은 여성이 항우울제 처방받는 수는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한 명도 채 되지 않는 정도의 차이로 많을 뿐”이라는 것이다.

많은 갱년기 여성이 증상을 호소하는 ‘브레인 포그’는 에스트로겐의 급격한 저하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에스트로겐은 예리하게 사고하는 걸 돕는데, 갱년기 수치가 떨어지면서 몽롱한 느낌이 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갱년기 여성이 증상을 호소하는 ‘브레인 포그’는 에스트로겐의 급격한 저하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에스트로겐은 예리하게 사고하는 걸 돕는데, 갱년기 수치가 떨어지면서 몽롱한 느낌이 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호르몬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충실히 소개한다. “호르몬은 수용체라고 부르는 특별한 호르몬 인지 부위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뉴런과 여러 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 호르몬은 열쇠고 수용체는 자물쇠인데, 열쇠인 호르몬이 자물쇠를 여는 순간 세포 내부에서는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많은 생체 반응이 시작된다.” 지은이는 여성호르몬과 신경세포의 연쇄작용을 큰 틀로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한 증상(브레인 포그·brain fog) △수면 장애 △홍조 △체온조절 문제 등 갱년기 여성들이 자주 호소하는 증상 등을 설명한다. 이해는 치료의 출발이다.

태아기·아동기· 사춘기·임신기·갱년기 등 여성의 생애주기별로 여성호르몬과 뇌가 어떻게 변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전 연령대 여성에게 흥미롭다. 다만, 여성호르몬에 대한 신경과학계의 연구 자체가 “아직 사춘기에 진입하지 못해” 여성호르몬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을 깨끗하게 걷어내기엔 다소 부족하다. “암컷은 호르몬 때문에 요동쳐 자료에 ‘잡음’을 너무 많이 넣는다며 편의상 수컷만을 대상으로 연구했던” 신경과학자가 많은 탓이다. 실제로 2009년 2000여건의 동물 실험을 분석한 결과, 신경과학 분야 실험동물의 성비는 암컷 한 마리 대 수컷 5.5마리였다. 그러나 여성호르몬이 여성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폭군’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존재 가치가 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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