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원예반 소년들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오근영 옮김/양철북(2012)
여자들은 어떤 남자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할까? 후배가 “남편이 아직도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가 봐, 거실 바닥을 밍크로 깔아주겠다는데”라고 해서 웃었던 적이 있다. 큰소리를 치는 남자보다 요리하는 남자, 친절한 남자가 더 사랑받는 시대다. <원예반 소년들>을 읽으며 식물을 돌보는 남자를 추가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변성기가 찾아온 여드름투성이 십대 남학생과 식물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소설은 “만나야만 했던 걸까, 아니면 순전히 우연이었을까”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뜻하지 않은 세 친구의 만남을 의미하지만 여기에 식물을 포함해도 좋겠다. 평범한 모범생 다쓰야는 새로 입학한 학교를 어슬렁거리다 버려진 온실을 발견한다. 점심시간에 밥도 먹었겠다 햇살도 따듯하게 비추겠다 온실 안에서 깜빡 잠이 든다. 눈을 떠보니 금속체인 목걸이를 걸고 빡빡머리에 눈썹도 밀어버린, 누가 봐도 불량스러운 오와다가 앞에 앉아 있다.
둘은 종종 이 버려진 비밀 아지트를 공유하다 야구부와 농구부에 가입하라는 선배들의 압박을 피해 얼떨결에 원예반에 들어간다. 여기에 머리에 종이 상자를 쓰고 아이들 몰래 교실이 아닌 상담실에서 공부하는 ‘박스 보이’ 쇼지까지 참여하며 동아리의 꼴이 갖춰진다. 어쩌다 원예반이 된 셋은 순전히 심심풀이로 화분에 물을 주고 빈 화분에 씨를 뿌린다. 한데 물을 준 것만으로 식물들이 몰라보게 달라진다. 반대로 아무리 물을 줘도 아무런 변화가 없기도 하다. 궁금증이 생긴 소년들은 책을 읽으며 식물 돌보는 법을 공부하고 그냥 꽃이 아니라 베고니아, 루피너스, 아프리카 봉선화, 금송화라는 이름도 알아간다. 다쓰야는 꽃 이름을 알게 되자 집과 학교를 오가는 길에 갑자기 꽃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놀라고, 시든 꽃 화분을 보면 걱정한다. 오와다는 아직 살아 있는데 버려진 화분을 주워오기도 한다.
소설은 시종일관 잔잔하고 별일 없어 보이지만 십대 남학생들이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 ‘독서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남학생에게 맨 처음 추천할 만한 책’으로도 적당하다. 남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갈등요소는 적지만 오와다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오와다는 지금껏 불량스러운 아이들과 어울렸다. 이대로 껄렁하게 지내다 야쿠자가 되고 싶지 않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왠지 학교를 진지하게 다니는 건 ‘소꿉놀이 같은 짓’이라고 내심 여기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채로 어정쩡하게 학교생활을 하던 오와다는 꽃을 키우고 친구를 만나며 변한다.
비슷하게 책을 읽는 게 시시하다 못해 부끄러운 짓이라 여기는 남학생이라면 오와다에게 감정 이입하며 소설을 읽어보면 좋겠다. 멋진 남자가 되는 비결에 대해 힌트를 하나만 준다면, 여름방학이 지나자 원예반에 여학생 두 명이 찾아와 가입했다. 여학생들은 ‘흙과 씨름하는’ 오와다와 쇼지를 보면서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축구건 꽃이건 무엇이 되었던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법이다. 원예 상식도 가득한 책이다. 중2부터.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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