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이 끝났을 때
레온 페스팅거·헨리 W. 리켄·스탠리 샥터 지음, 김승진 옮김/이후·2만원
“12월21일로 넘어가기 직전에 오대호의 범람으로 대홍수가 발생해 레이크시티가 사라질 것이라고 가정주부 메리언 키치 부인이 주장했다.” 1954년 9월 미국 지역 언론 <레이크시티 헤럴드>에 실린 기사 일부다. 당시 이 지역에선 종말론이 퍼지고 있었다. 큰 홍수가 나서 지구가 멸망하고 극히 일부만 외계인으로부터 ‘구원’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황당한 이 종말론을 반긴 건 세 명의 사회심리학자였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 사회관계연구소에서 일하던 이들은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상황(반증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키치 부인의 ‘홍수 예언 모임’은 이들의 연구를 심화시킬 절호의 기회였다. 믿음(지구 종말)이 있었고, 믿음을 반박하는 상황(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이 있었다. 예고된 ‘종말’을 한 달 앞둔 11월, 연구자들은 신분을 숨긴 채 이 모임에 잠입한다.
두 달여 동안 곁에서 지켜본 결과는 놀라웠다. 모임 참여자는 명백한 ‘반증 사건’을 겪은 후에도 믿음을 철회하지 않았으며 일부는 외려 더 적극적으로 전도했다. 믿음과 현실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외계인이 (구원하러) 왔으나 군중을 자극할까봐 돌아갔다’는 등의 변명을 하며 믿음에 맞춰 현실을 구겨버렸다. 예언일 전에 직장을 관두는 등 ‘투자행동’(믿음에 따른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홀로 있던 이들보다 믿음을 공유하는 그룹에 함께 있었던 사람일수록 믿음을 고집한다는 결론을 연구자는 내놓는다. 1955년 미국에서 첫 출간됐고 국내에 번역된 건 처음이다. 정치든 종교든 신념이 과잉된 ‘코로나19 시대’, 65년의 시차가 무색하다.
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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