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가 그레빙 지음, 이진일 옮김/길·3만3000원 헬가 그레빙(1930~2017)은 독일 사회민주당 좌파 진영에 몸담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로서 사회민주주의 이념의 재구성을 통해 자본주의 극복의 길을 찾았던 역사학자다. 2007년에 펴낸 <독일 노동운동사>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바탕에 깔고 독일 노동운동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지은이는 1966년에 이미 같은 제목의 책을 펴낸 바 있다. 당시 책에서는 1848년 혁명 이후부터 2차 대전 이후 시기까지를 포괄했지만, 2007년 저작에서는 2000년까지 서술의 영역을 확장했다. 더 큰 차이는 서술 방식에 있다. 첫 책에서 동독의 공산주의 노동운동에도 비중을 두었던 지은이는 새 책에서는 공산주의 운동을 대폭 생략하고 독일 사회민주당의 역사를 얼개로 삼아 역사를 서술한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은 ‘해석사’라고 할 수 있다. 이론이나 이념의 변화만을 추적하지도 않고 사건의 전개만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독일 노동운동사의 핵심적 문제들을 중심에 놓고 그 문제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데 강조점을 두는 것이다. 독일 노동운동의 역사는 초기에 운동을 이끌었던 페르디난트 라살, 독일 노동운동의 황제라고 불렸던 아우구스트 베벨, 수정주의 논쟁을 일으켰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좌익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이끌었던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걸출한 이론가와 지도자 들을 배출했다. 동시에 독일 노동운동은 19세기 후반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사회주의자 탄압과 20세기 나치 집권기의 공산주의·사민주의 세력의 극심한 말살책동과 같은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전체를 통시적으로 보면 독일 노동운동은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애초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특히 1970년대 이후 노동운동의 좌절과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변혁의 전망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실패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다. 지은이는 그런 실패 속에서도 노동운동과 그 운동을 지도한 좌파 정당이 자유·평등·연대의 사회를 만드는 데 강력한 동력이 됐음을 높이 평가한다. 독일 노동운동은 실패했지만 ‘옛 노동운동이 획득했던 해방적 힘’에 대한 기억을 간직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이 유지되고 정치·사회적으로 자유로운 미래를 찾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이 책은 내보인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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