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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유학의 ‘서’는 타인의 마음에 이르는 길을 비춘다

등록 2020-04-24 06:00수정 2020-04-24 09:57

공자부터 정약용까지 ‘서 담론’의 궤적 추적한 이향준의 연구서
유학 담론의 현대적 재해석 통해 더불어 사는 공감 세상 찾기
’서’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공자.
’서’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공자.

서, 인간의 징검다리

이향준 지음/마농지·2만3000원

유학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누구나 인(仁, 인간다움)을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학의 가르침 중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뭐라고 답할까. <논어>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학(學)을 꼽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맹자가 힘써 주장한 의(義)를 꼽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 인간의 징검다리>의 지은이 이향준 전남대 교수는 ‘서’(恕)야말로 두 번째 자리에 오를 만한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서’에 관한 최초의 통사적 연구서다.

‘서’라는 말은 현대어에서는 ‘용서’라는 말에 흔적을 남긴 것을 빼면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전통 유학에서는 비중이 작지 않은 말이었다. 서를 파자하면 ‘여심’(如心), 곧 ‘같은 마음’이 된다. 요즘 말로 하면 공감이나 감정이입에 해당한다. 이 책은 이 ‘서’라는 말이 유학사에 등장해서 변천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공자·맹자·순자·주희·왕부지·정약용을 거치며 ‘서’라는 글자가 지성사 속에서 어떤 운동 궤적을 그렸는지 소묘한다. 특히 지은이는 서의 의미를 현대 철학과 연관 지어 설명하면서 서라는 개념을 오늘의 윤리적 상황에 적용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서’라는 말이 유학사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미는 장면은 <논어> ‘위령공’편 23장에 나온다. 자공이 스승에게 “죽을 때까지 실천할 만한 한 마디 말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서”라고 답한 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고 부연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가 ‘서’에 담긴 뜻인 셈이다. 이 말은 인류 문명권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른바 ‘황금률’의 유학적 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설파했는데, 그 말은 공자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이냐 하는 문제야말로 인류 공통의 절박한 실천적 과제라는 사실이 이 황금률의 보편성에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공자가 ‘서’를 설파한 이래, 공자의 가르침이 왜 정당한지를 입증하려고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이 맹자였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에 측은지심이 있다는 것을 서의 근거로 삼았다.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져 죽으려 할 때 누구나 깜짝 놀라 달려가는 것이 인간의 선천적인 도덕 감정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순자는 맹자의 서에 담긴 약점을 꿰뚫어보고 서의 토대를 새로 구축하려고 했다. 인간의 감정에는 측은지심 같은 도덕적인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도덕적인 감정도 있다는 것이 순자의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감정 자체를 보편적 근거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감정이 도덕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별하는 반성적 사고가 중요하다. 맹자의 서가 따뜻한 감정의 서라면, 순자의 서는 차가운 이성의 서라고 할 수 있다.

신유학 시대에 들어와 주희가 완성한 새로운 유학 체계, 곧 성리학은 유학담론을 형이상학의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당연히 서 개념도 심대한 구조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에 서는 ‘충서’(忠恕)라는 더 큰 담론 속의 일부로 논의됐다. 전통 유학에서 ‘충’은 대체로 위로 향하는 마음을 뜻하고, ‘서’는 아래로 향하는 마음을 뜻한다. 그렇게 ‘위와 아래’를 가리키던 낱말은 신유학 체계 속에서 ‘안과 밖’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충이 마음 내부의 근본이라면 그 근본이 외화돼 나타난 것이 서라고 이해한 것이다. 주희에게 서는 인간의 형이상학적 본성에서부터 나타날 수밖에 없고, 나타나야만 하는 ‘당위의 서’였다. 명말청초의 왕부지는 주희의 서에 맞서 인간 욕망의 다양성에 주목했다. 인간의 욕망은 누구나 똑같을 것이라는 게 주희의 가정이었지만, 왕부지는 인간의 욕망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대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이 나는 욕망의 상호 인정을 중심으로 하는 서의 담론 체계가 등장한 것이다.

이 서의 개념사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정약용의 경우다. 정약용의 서 담론은 유교문명권과 기독교문명권의 만남을 보여주는 유학사의 예외적인 사건이다. 정약용은 한때 서학에 몰두하다 유학으로 돌아간 사람이다. 정약용이 젊은 날 탐독한 책 중에는 서양 예수회 선교사들이 지은 <천주실의>와 <칠극>도 있었다. 예수회는 유학의 ‘서’를 주로 ‘용서’의 개념으로 이해했는데, 특히 천주가 인간을 용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정약용은 유학자로서 자기수양과 자기책임의 정신에 입각해 이 용서의 개념을 비판했다. 절대자가 개입해 인간의 잘못을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의 ‘자조주의’에 반한다고 여긴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서’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을 살피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다른 사람의 욕구와 감정은 어디까지나 추정의 대상이지 확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타인의 감정을 읽어낸 뒤에 오히려 그 감정을 악용할 가능성이다. 이런 문제를 지은이는 현대 뇌과학이 밝혀낸 ‘거울 뉴런’을 이해하는 데도 적용한다. 거울 뉴런은 인간이 타인의 감정을 거울처럼 반영해 인식하는 뇌의 기능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울 뉴런은 성선설의 뇌과학적 근거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거울 뉴런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만큼이나 타인을 더 큰 고통에 빠뜨리는 데 쓰일 가능성도 품고 있다. 고문기술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인간은 서로 독립돼 있어 타인의 마음을 결코 훤히 들여다볼 수 없다. 상호주관적 합일은 멀고도 힘든 길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길에 이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지은이는 그 길이 쭉 뻗은 대로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심연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이며, ‘서’야말로 그 징검다리를 이루는 돌이라고 말한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서’ 개념을 형이상학적 지반 위에 올려놓은 주희.
‘서’ 개념을 형이상학적 지반 위에 올려놓은 주희.

기독교문명과 유교문명의 만남을 보여준 정약용.
기독교문명과 유교문명의 만남을 보여준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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