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다중 공통체 이어 새책 ‘어셈블리’ 발간 인터뷰
“‘다중’은 혐오·지배와 싸우기 위한 하나의 정치기획으로 제시
한국 거리시위 감동…페미니즘-프롤레타리아 협력 길 찾아야”
“‘다중’은 혐오·지배와 싸우기 위한 하나의 정치기획으로 제시
한국 거리시위 감동…페미니즘-프롤레타리아 협력 길 찾아야”

파리와 베네치아를 오가며 저술과 강연활동을 하는 안토니오 네그리(왼쪽)와 미국 듀크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마이클 하트. 가장 최근의 사진이다. 알렙 제공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한겨레 이메일 인터뷰 전문]
-<제국> , <다중 >, <공통체 >는 대안적 삶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한국의 여러 커뮤니티들과 사람들에게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 한국의 독자들은 <어셈블리 >를 이 책들과 연결시켜 읽을 텐데요 . 당신들의 지적인 여정에서 <어셈블리 >와 <제국 > 3부작이 맺는 관계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우리 자신의 작업을 성찰하는 데 있어 우리가 최선의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최선의 대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책들에는 적어도 3개의 커다란 주제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첫째 , 우리는 전 지구적 자본이 휘두르는 현재의 지배형태를 이해하고자 했으며 , 이 책들에서 우리는 지배형태를 각기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 우리는 맨 처음 나온 <제국 >에서 이러한 지배체제의 전 지구적 성격을 혼합된 구성으로 분석했습니다 . (그리고 이러한 분석은 다른 책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 제국은 국민국가 권력을 포함하지만 , 또한 [UN, IMF와 같은 ] 초국적 기관들 , [애플 , 마이크로소프트 , 구글 , 삼성과 같은 ] 지배적인 글로벌 기업 , [언론 , 방송사 , 각종 NGO 등을 포함하는 ] 그 밖의 기구들과 협력해 국민국가 너머로 확장됩니다 . <어셈블리 >에서 우리는 이러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맥락 안에서 일어나는 사적 소유뿐만이 아니라 화폐 및 금융 통치로도 관심사를 넓혔습니다 .
둘째 , 우리는 해방 기획을 위해 필요한 개념들을 인식하고 심화시키고자 했으며 , 여기에는 민주주의 , 자유 , 자율과 같이 과거에는 우리의 운동 전통에 핵심적이었지만 , 지금은 부패되어버린 개념의 의미를 두고 벌이는 투쟁이 포함됩니다 . 이런 식으로 우리의 목표는 각 책을 쓰면서 진화했고 , 그것은 해방투쟁의 여러 흐름들 , 즉 프롤레타리아 운동 , 페미니즘 운동 , 반식민주의 운동 , 반인종주의 운동 등이 어떻게 함께 설 수 있고 , 또 연합해서 자신들의 힘을 배가시킬 수 있는지를 인식하기 위한 것입니다 .
셋째 , 우리는 항상 그 당시에 일어난 사회운동들로부터 배우려고 했습니다 . 그들의 실천적 혁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론적 발전까지 말이죠 . 지식인들은 생각하고 활동가들은 행동한다는 식의 통상적인 관점은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 집단적인 사회운동과정에서 커다란 이론적 발전이 있었고 , 이로 인해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풍부해질 수 있었죠 .”
-당신들도 알다시피 , 한국에는 지난 수십 년간 ‘거리시위 ’라 불리는 저항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 하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거리시위가 지금까지는 진보적이었지만 , 최근의 거리시위에는 극우주의자들과 온건한 보수주의자들의 시위도 포함됩니다 . 이 안에는 젠더 , 출신지역 , 거주지 , 사회계급에 기초한 아주 복잡한 혐오와 배제가 있습니다 . 혐오와 배제의 패턴이 지속적으로 더 복잡하게 커가는 지금 시기에 , ‘다중의 긍정성 ’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었던 한국의 거리시위와 여러 형태의 저항 전통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 당신이 강조한 대로 모든 사회운동들이 진보적인 것은 아니며 또 모두가 해방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은 옳습니다 . 1920년대부터 거리시위에서 아주 폭력적으로 행동해왔던 파시스트들은 물론이고 , 오늘날의 사회운동에서도 (폭력적이든 그렇지 않든 ) 여러 ‘시계를 과거로 돌려놓는 ’ 사례들이 있습니다 . <어셈블리 >를 쓰면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 책에서는 오늘날의 우익운동들에 대해 한 장 [4장 ]만을 할애해 다루었습니다 . 이 주제는 훨씬 더 관심을 기울인 만한 것이며 ,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적절하게 다룰 다른 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아마도 우리는 그 책을 쓰는 일에 적합한 사람들은 아닐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다중 ’ 개념이 단지 무차별적인 방식으로 대중이나 인구 집단 전체를 지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군요 . 우리는 다중을 하나의 정치 기획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 이 기획은 앞서 지적하신 위계의 노선과 싸우기 위해 조직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 다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획일적·동질적인 노동계급의 재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발전된 형태로 생각해야 합니다 . 오늘날의 프롤레타리아트는 폭넓은 다양성을 아우르는데 , 여기에는 산업노동자 , 임금을 지불받지 못하는 젠더화된 가사노동자 , 인종화된 서비스 노동자 , 다양한 산업에서의 불안정노동자 , 첨단기술 노동자 등이 포함됩니다 . 우선 다중은 계급을 다양성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제공합니다 . 그러나 다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인 것입니다 ) 자본 , 가부장제 , 백인 우월성 , 민족성 등 상이한 사회적 지배형태의 교차 또한 파악해야 합니다 . 이러한 상이한 지배의 축들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입니다 . 가부장제 , 인종 위계 , 이성애 지배는 자본의 산물이 아니며 , 계급지배에 비해 부차적인 것도 아닙니다 . 오히려 우리의 세계에서 이 모든 지배의 축들은 상호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 그래서 함께 토론하고 공격해야 합니다 . 다시 말해 다중은 이런 상이한 해방노선과 나란히 다양성을 함께 가동시키는 정치 기획이어야 합니다 .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다중이 당신이 언급한 바로 그 혐오와 지배와 싸우기 위해 조직되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어셈블리>의 한국어 제목은 영어 제목을 그대로 음차 했습니다 . ‘어셈블리 ’라는 말은 모임을 연상시킵니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19로 인해 한국 지방정부는 광장 모임을 것을 금지했습니다 . 바이러스가 종교집단을 통해 확산되었기 때문에 , 종교회합이 금지되었고 , 한국가톨릭교회도 189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를 연기시켰습니다 . 코로나바이러스 19가 대구시에 있는 신흥종교집단 신도들 사이에서 퍼져나가 이제는 대구시 전체가 집단 마비상태입니다 . 이런 환경에서는 안타깝게도 어셈블리가 사실상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 하지만 저는 인터넷을 통해 담론 효과를 창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는 생각합니다 . 바이러스 시대에 만들어질 어셈블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
“탁월한 질문입니다 ! 이 위기의 시기에는 디지털 형태의 어셈블리와 사회적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은 옳습니다 . 우리는 그러한 형태를 실험하는 활동가들을 지켜보는 중입니다 . 그러나 또한 우리는 바이러스와 그것을 억제하려는 정부의 조치가 공통적인 것을 거의 완전히 제거한다는 사실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즉 그러한 조치는 ‘함께 있음 ’, 공유형태 , 사회적 협력의 실천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 우리는 이러한 함께 있기 형태의 공통적인 것을 해방과정의 열쇠로 여기지만 , 그 형태는 또한 오늘날의 자본주의 생산에서 핵심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 지금의 위기는 사실 자본주의 생산과 자본주의 사회가 얼마나 많이 공통적인 것에 의존하는지 (이것은 전에도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이긴 하지만 )를 부각시킵니다 . 다시 말해 자본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협동에 의존하며 , (공장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도처에서 ) 우리가 함께 생산한 가치를 추출합니다 . 가령 서비스 노동 , 교육 , 그리고 그 밖의 노동의 사회적 맥락에서 행해지는 정동노동 (이것은 대체로 젠더화되어 있습니다 )을 생각해봅시다 . 우리의 주장은 공통적인 것이 전 사회영역을 가로질러 , 대도시의 삶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런 공통적인 것에서 생산된 모든 가치가 자본의 강탈에 종속됩니다 . 이 모든 일이 현재는 유예되어 있고 , 우리는 자본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손실을 입을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자본은 이러한 위기에서 살아남을 것이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얻게 되는 교훈은 자본이 공통적인 것에 얼마나 많이 중심적으로 의존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
우리가 앞서 말했듯이 , 공통적인 것과 그와 관계된 다양한 방식의 어셈블리가 오늘날 자본에게 필수적이라는 사실에 더해 , 그것이 또한 미래에 있을 해방의 열쇠라는 점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 위기 이후의 세계에는 공통적인 것과 그것이 지니는 어셈블리의 방식이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형태로 돌아올 것입니다 .”
-‘다중’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이들 중에는 정상성·남성·이성애 헤게모니와 같은 전통적인 권력질서를 점차 획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 그들은 정상성·남성·이성애 헤게모니를 거부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 실천적인 생활영역에서는 주류를 선호하거나 “부자 좌파 ”(한국에서는 이를 ‘강남좌파 ’라고 부릅니다 )가 되려는 욕망도 가집니다 . ‘다중’으로 통합되는 기계 , 지식 , 자원 , 노동 등이 사적소유에서 이전되어 ‘공통적인 것’에 속해야 하기 때문에 ‘부자 좌파’와 ‘다중’은 양립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 이렇게 이해하는 게 맞나요 ? ‘부자 좌파 ’가 되고 싶은 욕망 혹은 다중에 대한 담론을 독점하려고 하는 부자 좌파의 추종자들에 대한 당신들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
‘다중의 기업가정신 ’은 신자유주의 기업가정신의 의미를 널리 퍼뜨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나요 ? ‘다중의 기업가정신 ’은 이윤창출을 위한 협동이 아닌 민주적 협동의 출현 , 따라서 다른 생산양식의 출현을 의미하는 건가요 ? 이것이 맞다면 다중의 기업가정신이 현실세계에서 드러난 사례가 있나요 ?
“기업가정신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고 보신 것은 옳으며 우리는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 우리는 비행기를 납치해 새로운 도착지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하는 것처럼 그 개념을 낚아채고 싶습니다 .
이러한 언어사용은 우리의 작업에서 전형적으로 해온 실천과 관련이 있지만 아마도 그 방향은 정반대를 향할 것입니다 . 우리 작업의 주요한 목적은 개념들과 대결해서 좌파의 정치적 어휘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 이것은 대개 우리의 운동 전통에서 사용되던 개념들을 되찾는 것을 수반합니다 . 가령 일부 좌파들은 민주주의 개념을 하나의 이상이자 열망으로 사용하기를 그만두었습니다 . 그 개념이 너무 심하게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 좌파들은 여러 맥락에서 민주주의가 단지 미국 지배의 명령을 따르거나 기껏해야 4-6년에 한번 사람들을 대의하지 않는 이들을 뽑는 선거의 스펙터클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올바르게 선언합니다 . 우리의 관점은 민주주의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그 의미를 두고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이 우리 전통의 핵심을 이루며 , 우리에 앞서 투쟁하다 죽어간 이들의 희망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그 개념을 복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 아니 복원보다는 어쩌면 우리 시대에 맞게 민주주의 개념을 발명해야 하겠지요 . 자유나 그 밖의 여러 개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것들은 전에는 해방투쟁의 길잡이별로 기능했지만 지금은 왜곡되고 부패되어 버렸죠 .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에 대한 우리의 사용법도 이와 유사하지만 정확히 정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 여러 경우들에서 극우세력들은 우리의 개념을 가져가 쓰고 변질시켰습니다 . 이번에는 우리가 그들이 쓰는 개념들 중 하나를 가져오고 싶습니다 . 우리는 [기업 ․사업 ․진취성으로 번역되는 ] ‘엔터프라이즈 ’(enterprise)가 실제로는 과감한 노력을 의미한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 호머의 <오디세이 >에서 오디세우스는 과감한 엔터프라이즈 [사업 ]를 조직했는데 , 이 점에서는 모범적인 기업가일 수 있겠습니다 . 혹은 근대 시기 레닌은 위대한 정치적 기업가였습니다 . (우리는 우리 책의 제목을 <어셈블리 > 대신 <엔터프라이즈 >라고 이름붙이고 , 스타트랙의 엔터프라이즈호를 표지로 장식할까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 하지만 우리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던 그런 식의 유머와 아이러니가 일부 독자들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지금과 같이 결정했죠 .) 그러므로 우리의 관점에서 기업가정신은 실제로는 사회적 협동을 조직하는 집단적 기획을 의미합니다 .
이러한 의미에서 빈 건물을 점거하여 사회센터를 만든 청년들은 기업가정신의 한 형태로 보입니다 . 혹은 철거를 막고 집 없는 이들을 위해 텅 빈 건축물을 점거하는 정치조직 , 마땅히 자신들의 것이었어야 할 땅의 반환을 요구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획도 이에 해당합니다 . 게다가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페미니즘 운동들이 최근에 실험하고 있는 ‘페미니즘 파업 ’의 실천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기업가정신의 한 형태입니다 . 그들이 여성학살과 성폭력에 맞서 시위를 할 뿐만 아니라 , 또한 운동 내부에서 실질적인 대안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다중의 기획은 오늘날 이러한 기업가정신의 사례로 넘쳐납니다 .”
-여러 형태의 다양한 민주주의가 있는 것처럼 여러 형태의 다양한 페미니즘도 있습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강한 역동성을 갖고 있고 , K-페미니즘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 하지만 간간히 페미니즘 운동의 주체성을 깎아내리는 일을 의도한 움직임도 있습니다 . 비록 좌파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이 가끔 손을 잡기는 하지만 , 서로 싸우는 일도 잦습니다 .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피해여성들이 텔레그램에서 성적으로 착취당한 것으로 드러난 이른바 ‘N번방 사건 ’이 화제가 됐습니다 . 미투운동 동안 한 피해여성이 차기대권주자였던 한 남성을 고발했고 , 그는 오랜 법정다툼 끝에 승소할 수 있었습니다 . 그 사이 일부 좌파가 페미니즘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 ‘모든 남자들이 그런 건 아니잖아 ’라고 외치는 이성애 남성들이 있었으며 , ‘여성 젠더 모두가 피해자다 ’고 주장한 페미니즘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 일부 마르크스주의 좌파 남녀들이 페미니즘을 비난하기도 했죠 . 당신들은 페미니즘과 좌파 이데올로기가 같이 어울리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
“그렇습니다 .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 페미니즘의 정치기획과 프롤레타리아의 정치기획은 공유된 투쟁에서 협력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 과거나 지금이나 무수한 사례들이 있지만 , 이것은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그리고 이것은 어떤 외부적인 연대 형태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 가령 이러한 외부적 연대에서는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 페미니스트의 투쟁이 실제로 그들 자신의 투쟁에 내부적이라는 점을 인식하지는 않습니다 . 우리가 언젠가 얘기했던 적이 있듯이 자본주의 지배와 가부장제는 끈끈하게 얽혀 있습니다 . 우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마주하고 있고 또한 인종적 자본주의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 가부장제나 자본주의 중 하나를 공격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다른 쪽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다중 개념이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발전시킨 교차성 이론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군요 . 우리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아쉽게도 우리는 당신이 말한 한국 사회 안에서 벌어진 논쟁을 언급할 자격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 허나 우리가 이러한 지배 노선의 교차를 부각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페미니즘이나 맑스주의 혹은 반인종주의나 그 밖의 운동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이런 식의 내부 비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논쟁이 공유된 투쟁에 대한 인식에 맞춰 틀이 짜여져야 한다는 점을 긍정할 뿐입니다 .”
-당신들의 향후 출판계획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함께 책 한 권을 쓰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늘 어떤 책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 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단계에서는 책 내용을 간추려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 하지만 우리는 이 기획의 한 부분에 우리가 여기서 다중 , 교차성 , 연대에 관해 논의했던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페미니스트 , 퀴어 , 반인종주의자 , 탈식민주의자 , 장애인 운동가 , 반제국주의자 , 프롤레타리아 , 그 밖에 해방투쟁들이 함께 하나의 대항권력 형태를 구성할 수 있는 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이러한 방향에 있는 활동가들과 실험들에 깊이 담겨 있는 욕망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최근 『뉴 레프트 리뷰 』에 한 편의 글을 실었는데 , 이 글은 이런 방향으로 내딛은 첫 걸음이며 우리는 이것을 더 진전시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이것은 다중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다양한 형태의 지배를 파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이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적 대안을 형성하는 하나의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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