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다중 공통체 이어 새책 ‘어셈블리’ 발간 인터뷰
“‘다중’은 혐오·지배와 싸우기 위한 하나의 정치기획으로 제시
한국 거리시위 감동…페미니즘-프롤레타리아 협력 길 찾아야”
“‘다중’은 혐오·지배와 싸우기 위한 하나의 정치기획으로 제시
한국 거리시위 감동…페미니즘-프롤레타리아 협력 길 찾아야”
![파리와 베네치아를 오가며 저술과 강연활동을 하는 안토니오 네그리(왼쪽)와 미국 듀크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마이클 하트. 가장 최근의 사진이다. 알렙 제공 파리와 베네치아를 오가며 저술과 강연활동을 하는 안토니오 네그리(왼쪽)와 미국 듀크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마이클 하트. 가장 최근의 사진이다. 알렙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721/imgdb/original/2020/0413/20200413503334.jpg)
파리와 베네치아를 오가며 저술과 강연활동을 하는 안토니오 네그리(왼쪽)와 미국 듀크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마이클 하트. 가장 최근의 사진이다. 알렙 제공
![](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740/imgdb/original/2020/0413/20200413503336.jpg)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한겨레 이메일 인터뷰 전문]
-<제국> , <다중 >, <공통체 >는 대안적 삶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한국의 여러 커뮤니티들과 사람들에게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 한국의 독자들은 <어셈블리 >를 이 책들과 연결시켜 읽을 텐데요 . 당신들의 지적인 여정에서 <어셈블리 >와 <제국 > 3부작이 맺는 관계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우리 자신의 작업을 성찰하는 데 있어 우리가 최선의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최선의 대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 책들에는 적어도 3개의 커다란 주제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첫째 , 우리는 전 지구적 자본이 휘두르는 현재의 지배형태를 이해하고자 했으며 , 이 책들에서 우리는 지배형태를 각기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 우리는 맨 처음 나온 <제국 >에서 이러한 지배체제의 전 지구적 성격을 혼합된 구성으로 분석했습니다 . (그리고 이러한 분석은 다른 책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 제국은 국민국가 권력을 포함하지만 , 또한 [UN, IMF와 같은 ] 초국적 기관들 , [애플 , 마이크로소프트 , 구글 , 삼성과 같은 ] 지배적인 글로벌 기업 , [언론 , 방송사 , 각종 NGO 등을 포함하는 ] 그 밖의 기구들과 협력해 국민국가 너머로 확장됩니다 . <어셈블리 >에서 우리는 이러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맥락 안에서 일어나는 사적 소유뿐만이 아니라 화폐 및 금융 통치로도 관심사를 넓혔습니다 .
둘째 , 우리는 해방 기획을 위해 필요한 개념들을 인식하고 심화시키고자 했으며 , 여기에는 민주주의 , 자유 , 자율과 같이 과거에는 우리의 운동 전통에 핵심적이었지만 , 지금은 부패되어버린 개념의 의미를 두고 벌이는 투쟁이 포함됩니다 . 이런 식으로 우리의 목표는 각 책을 쓰면서 진화했고 , 그것은 해방투쟁의 여러 흐름들 , 즉 프롤레타리아 운동 , 페미니즘 운동 , 반식민주의 운동 , 반인종주의 운동 등이 어떻게 함께 설 수 있고 , 또 연합해서 자신들의 힘을 배가시킬 수 있는지를 인식하기 위한 것입니다 .
셋째 , 우리는 항상 그 당시에 일어난 사회운동들로부터 배우려고 했습니다 . 그들의 실천적 혁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론적 발전까지 말이죠 . 지식인들은 생각하고 활동가들은 행동한다는 식의 통상적인 관점은 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 집단적인 사회운동과정에서 커다란 이론적 발전이 있었고 , 이로 인해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풍부해질 수 있었죠 .”
-당신들도 알다시피 , 한국에는 지난 수십 년간 ‘거리시위 ’라 불리는 저항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 하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거리시위가 지금까지는 진보적이었지만 , 최근의 거리시위에는 극우주의자들과 온건한 보수주의자들의 시위도 포함됩니다 . 이 안에는 젠더 , 출신지역 , 거주지 , 사회계급에 기초한 아주 복잡한 혐오와 배제가 있습니다 . 혐오와 배제의 패턴이 지속적으로 더 복잡하게 커가는 지금 시기에 , ‘다중의 긍정성 ’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일었던 한국의 거리시위와 여러 형태의 저항 전통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 당신이 강조한 대로 모든 사회운동들이 진보적인 것은 아니며 또 모두가 해방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은 옳습니다 . 1920년대부터 거리시위에서 아주 폭력적으로 행동해왔던 파시스트들은 물론이고 , 오늘날의 사회운동에서도 (폭력적이든 그렇지 않든 ) 여러 ‘시계를 과거로 돌려놓는 ’ 사례들이 있습니다 . <어셈블리 >를 쓰면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 책에서는 오늘날의 우익운동들에 대해 한 장 [4장 ]만을 할애해 다루었습니다 . 이 주제는 훨씬 더 관심을 기울인 만한 것이며 ,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적절하게 다룰 다른 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아마도 우리는 그 책을 쓰는 일에 적합한 사람들은 아닐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다중 ’ 개념이 단지 무차별적인 방식으로 대중이나 인구 집단 전체를 지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군요 . 우리는 다중을 하나의 정치 기획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 이 기획은 앞서 지적하신 위계의 노선과 싸우기 위해 조직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 다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획일적·동질적인 노동계급의 재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발전된 형태로 생각해야 합니다 . 오늘날의 프롤레타리아트는 폭넓은 다양성을 아우르는데 , 여기에는 산업노동자 , 임금을 지불받지 못하는 젠더화된 가사노동자 , 인종화된 서비스 노동자 , 다양한 산업에서의 불안정노동자 , 첨단기술 노동자 등이 포함됩니다 . 우선 다중은 계급을 다양성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제공합니다 . 그러나 다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인 것입니다 ) 자본 , 가부장제 , 백인 우월성 , 민족성 등 상이한 사회적 지배형태의 교차 또한 파악해야 합니다 . 이러한 상이한 지배의 축들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입니다 . 가부장제 , 인종 위계 , 이성애 지배는 자본의 산물이 아니며 , 계급지배에 비해 부차적인 것도 아닙니다 . 오히려 우리의 세계에서 이 모든 지배의 축들은 상호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 그래서 함께 토론하고 공격해야 합니다 . 다시 말해 다중은 이런 상이한 해방노선과 나란히 다양성을 함께 가동시키는 정치 기획이어야 합니다 .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다중이 당신이 언급한 바로 그 혐오와 지배와 싸우기 위해 조직되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어셈블리>의 한국어 제목은 영어 제목을 그대로 음차 했습니다 . ‘어셈블리 ’라는 말은 모임을 연상시킵니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19로 인해 한국 지방정부는 광장 모임을 것을 금지했습니다 . 바이러스가 종교집단을 통해 확산되었기 때문에 , 종교회합이 금지되었고 , 한국가톨릭교회도 189년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를 연기시켰습니다 . 코로나바이러스 19가 대구시에 있는 신흥종교집단 신도들 사이에서 퍼져나가 이제는 대구시 전체가 집단 마비상태입니다 . 이런 환경에서는 안타깝게도 어셈블리가 사실상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 하지만 저는 인터넷을 통해 담론 효과를 창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는 생각합니다 . 바이러스 시대에 만들어질 어셈블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
“탁월한 질문입니다 ! 이 위기의 시기에는 디지털 형태의 어셈블리와 사회적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은 옳습니다 . 우리는 그러한 형태를 실험하는 활동가들을 지켜보는 중입니다 . 그러나 또한 우리는 바이러스와 그것을 억제하려는 정부의 조치가 공통적인 것을 거의 완전히 제거한다는 사실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 즉 그러한 조치는 ‘함께 있음 ’, 공유형태 , 사회적 협력의 실천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 우리는 이러한 함께 있기 형태의 공통적인 것을 해방과정의 열쇠로 여기지만 , 그 형태는 또한 오늘날의 자본주의 생산에서 핵심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 지금의 위기는 사실 자본주의 생산과 자본주의 사회가 얼마나 많이 공통적인 것에 의존하는지 (이것은 전에도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이긴 하지만 )를 부각시킵니다 . 다시 말해 자본은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협동에 의존하며 , (공장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도처에서 ) 우리가 함께 생산한 가치를 추출합니다 . 가령 서비스 노동 , 교육 , 그리고 그 밖의 노동의 사회적 맥락에서 행해지는 정동노동 (이것은 대체로 젠더화되어 있습니다 )을 생각해봅시다 . 우리의 주장은 공통적인 것이 전 사회영역을 가로질러 , 대도시의 삶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런 공통적인 것에서 생산된 모든 가치가 자본의 강탈에 종속됩니다 . 이 모든 일이 현재는 유예되어 있고 , 우리는 자본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손실을 입을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자본은 이러한 위기에서 살아남을 것이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얻게 되는 교훈은 자본이 공통적인 것에 얼마나 많이 중심적으로 의존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
우리가 앞서 말했듯이 , 공통적인 것과 그와 관계된 다양한 방식의 어셈블리가 오늘날 자본에게 필수적이라는 사실에 더해 , 그것이 또한 미래에 있을 해방의 열쇠라는 점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 위기 이후의 세계에는 공통적인 것과 그것이 지니는 어셈블리의 방식이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형태로 돌아올 것입니다 .”
-‘다중’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이들 중에는 정상성·남성·이성애 헤게모니와 같은 전통적인 권력질서를 점차 획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 그들은 정상성·남성·이성애 헤게모니를 거부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 실천적인 생활영역에서는 주류를 선호하거나 “부자 좌파 ”(한국에서는 이를 ‘강남좌파 ’라고 부릅니다 )가 되려는 욕망도 가집니다 . ‘다중’으로 통합되는 기계 , 지식 , 자원 , 노동 등이 사적소유에서 이전되어 ‘공통적인 것’에 속해야 하기 때문에 ‘부자 좌파’와 ‘다중’은 양립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 이렇게 이해하는 게 맞나요 ? ‘부자 좌파 ’가 되고 싶은 욕망 혹은 다중에 대한 담론을 독점하려고 하는 부자 좌파의 추종자들에 대한 당신들의 입장은 무엇인가요 ?
‘다중의 기업가정신 ’은 신자유주의 기업가정신의 의미를 널리 퍼뜨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나요 ? ‘다중의 기업가정신 ’은 이윤창출을 위한 협동이 아닌 민주적 협동의 출현 , 따라서 다른 생산양식의 출현을 의미하는 건가요 ? 이것이 맞다면 다중의 기업가정신이 현실세계에서 드러난 사례가 있나요 ?
“기업가정신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고 보신 것은 옳으며 우리는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 우리는 비행기를 납치해 새로운 도착지 쪽으로 방향을 틀게 하는 것처럼 그 개념을 낚아채고 싶습니다 .
이러한 언어사용은 우리의 작업에서 전형적으로 해온 실천과 관련이 있지만 아마도 그 방향은 정반대를 향할 것입니다 . 우리 작업의 주요한 목적은 개념들과 대결해서 좌파의 정치적 어휘를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 이것은 대개 우리의 운동 전통에서 사용되던 개념들을 되찾는 것을 수반합니다 . 가령 일부 좌파들은 민주주의 개념을 하나의 이상이자 열망으로 사용하기를 그만두었습니다 . 그 개념이 너무 심하게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 좌파들은 여러 맥락에서 민주주의가 단지 미국 지배의 명령을 따르거나 기껏해야 4-6년에 한번 사람들을 대의하지 않는 이들을 뽑는 선거의 스펙터클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올바르게 선언합니다 . 우리의 관점은 민주주의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그 의미를 두고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왜냐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이 우리 전통의 핵심을 이루며 , 우리에 앞서 투쟁하다 죽어간 이들의 희망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그 개념을 복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 아니 복원보다는 어쩌면 우리 시대에 맞게 민주주의 개념을 발명해야 하겠지요 . 자유나 그 밖의 여러 개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것들은 전에는 해방투쟁의 길잡이별로 기능했지만 지금은 왜곡되고 부패되어 버렸죠 .
‘기업가정신 ’(entrepreneurship)에 대한 우리의 사용법도 이와 유사하지만 정확히 정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 여러 경우들에서 극우세력들은 우리의 개념을 가져가 쓰고 변질시켰습니다 . 이번에는 우리가 그들이 쓰는 개념들 중 하나를 가져오고 싶습니다 . 우리는 [기업 ․사업 ․진취성으로 번역되는 ] ‘엔터프라이즈 ’(enterprise)가 실제로는 과감한 노력을 의미한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 호머의 <오디세이 >에서 오디세우스는 과감한 엔터프라이즈 [사업 ]를 조직했는데 , 이 점에서는 모범적인 기업가일 수 있겠습니다 . 혹은 근대 시기 레닌은 위대한 정치적 기업가였습니다 . (우리는 우리 책의 제목을 <어셈블리 > 대신 <엔터프라이즈 >라고 이름붙이고 , 스타트랙의 엔터프라이즈호를 표지로 장식할까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 하지만 우리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던 그런 식의 유머와 아이러니가 일부 독자들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지금과 같이 결정했죠 .) 그러므로 우리의 관점에서 기업가정신은 실제로는 사회적 협동을 조직하는 집단적 기획을 의미합니다 .
이러한 의미에서 빈 건물을 점거하여 사회센터를 만든 청년들은 기업가정신의 한 형태로 보입니다 . 혹은 철거를 막고 집 없는 이들을 위해 텅 빈 건축물을 점거하는 정치조직 , 마땅히 자신들의 것이었어야 할 땅의 반환을 요구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획도 이에 해당합니다 . 게다가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페미니즘 운동들이 최근에 실험하고 있는 ‘페미니즘 파업 ’의 실천도 이러한 맥락에서는 기업가정신의 한 형태입니다 . 그들이 여성학살과 성폭력에 맞서 시위를 할 뿐만 아니라 , 또한 운동 내부에서 실질적인 대안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다중의 기획은 오늘날 이러한 기업가정신의 사례로 넘쳐납니다 .”
-여러 형태의 다양한 민주주의가 있는 것처럼 여러 형태의 다양한 페미니즘도 있습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강한 역동성을 갖고 있고 , K-페미니즘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 하지만 간간히 페미니즘 운동의 주체성을 깎아내리는 일을 의도한 움직임도 있습니다 . 비록 좌파노동운동과 페미니즘이 가끔 손을 잡기는 하지만 , 서로 싸우는 일도 잦습니다 .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피해여성들이 텔레그램에서 성적으로 착취당한 것으로 드러난 이른바 ‘N번방 사건 ’이 화제가 됐습니다 . 미투운동 동안 한 피해여성이 차기대권주자였던 한 남성을 고발했고 , 그는 오랜 법정다툼 끝에 승소할 수 있었습니다 . 그 사이 일부 좌파가 페미니즘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 ‘모든 남자들이 그런 건 아니잖아 ’라고 외치는 이성애 남성들이 있었으며 , ‘여성 젠더 모두가 피해자다 ’고 주장한 페미니즘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 일부 마르크스주의 좌파 남녀들이 페미니즘을 비난하기도 했죠 . 당신들은 페미니즘과 좌파 이데올로기가 같이 어울리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
“그렇습니다 .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 페미니즘의 정치기획과 프롤레타리아의 정치기획은 공유된 투쟁에서 협력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 과거나 지금이나 무수한 사례들이 있지만 , 이것은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그리고 이것은 어떤 외부적인 연대 형태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 가령 이러한 외부적 연대에서는 반자본주의 활동가들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 페미니스트의 투쟁이 실제로 그들 자신의 투쟁에 내부적이라는 점을 인식하지는 않습니다 . 우리가 언젠가 얘기했던 적이 있듯이 자본주의 지배와 가부장제는 끈끈하게 얽혀 있습니다 . 우리는 가부장적 자본주의와 마주하고 있고 또한 인종적 자본주의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 가부장제나 자본주의 중 하나를 공격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다른 쪽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다중 개념이 미국의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발전시킨 교차성 이론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군요 . 우리는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아쉽게도 우리는 당신이 말한 한국 사회 안에서 벌어진 논쟁을 언급할 자격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 허나 우리가 이러한 지배 노선의 교차를 부각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페미니즘이나 맑스주의 혹은 반인종주의나 그 밖의 운동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이런 식의 내부 비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논쟁이 공유된 투쟁에 대한 인식에 맞춰 틀이 짜여져야 한다는 점을 긍정할 뿐입니다 .”
-당신들의 향후 출판계획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함께 책 한 권을 쓰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늘 어떤 책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 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단계에서는 책 내용을 간추려 말씀드리기는 곤란합니다 . 하지만 우리는 이 기획의 한 부분에 우리가 여기서 다중 , 교차성 , 연대에 관해 논의했던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페미니스트 , 퀴어 , 반인종주의자 , 탈식민주의자 , 장애인 운동가 , 반제국주의자 , 프롤레타리아 , 그 밖에 해방투쟁들이 함께 하나의 대항권력 형태를 구성할 수 있는 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이러한 방향에 있는 활동가들과 실험들에 깊이 담겨 있는 욕망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최근 『뉴 레프트 리뷰 』에 한 편의 글을 실었는데 , 이 글은 이런 방향으로 내딛은 첫 걸음이며 우리는 이것을 더 진전시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이것은 다중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다양한 형태의 지배를 파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이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적 대안을 형성하는 하나의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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