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 탐욕스런 금융에 맞선 한 키코 피해 기업인의 분투기
조붕구 지음/시공사·1만6000원
조붕구(가운데 흰 와이셔츠 입은 이) 코막중공업 대표는 지난 12년 동안 ‘키코 피해’ 기업들을 조직하고 독려하며 운동의 방향을 제시한 조직가이자 이론가이며 지도자였다. 사진은 2018년 사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조 대표가 발언하는 모습. 시공사 제공
“환율 관리 어려우시죠?”
이 한마디가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단돈 250만원으로 창업한 회사를 10년 만에 글로벌 우량수출기업으로 키운 지은이는 ‘키코’(KIKO)라는 덫에 걸려, 상상 가능한 모든 불행의 시간과 맞닥뜨렸다. 여기서 끝이라면 가끔 보아왔던 ‘키코 피해 기업인’의 사연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역경을 딛고 끝내 재기에 성공했으며, 자신을 쓰러뜨린 금융권력과 부조리한 세상을 상대로 12년째 싸우고 있다. 또한 혼자만의 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피해 기업들의 수호천사가 되어 고통을 나누며 제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붕구 코막중공업 대표가 펴낸 책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는 한 기업인의 성공과 실패, 투쟁과 재기의 드라마이자, 한국 사회의 패권 구조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다. 책은 지은이가 맨손으로 시작한 건설중장비 수출 사업을 성공시킨 비화부터, 박정희 시대 야당이었던 신민당 소속 정치인 아버지의 가르침, 외환파생상품인 ‘키코’ 사태로 인해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가정이 풍비박산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적는다. 1등급이었던 개인 신용등급은 10등급으로 추락했고, 업자들로부터의 ‘줄소송’과 내부 직원들의 배신, 세무당국의 특별세무조사 등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무너져버렸을 나락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회사를 되찾았으며, 무너졌던 글로벌 영업망을 재구축했다.
무엇보다 믿기 어려운 사실은, 그가 무간지옥의 시간을 버텨내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사회화하는 투쟁을 병행했다는 것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고서야 일과를 시작하던, 보수신문을 정독하던 기업인은 ‘좌파 운동권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리의 투사가 되었다. 지난 12년 동안 그는 피해 기업들을 조직하고 독려하며 운동의 방향을 제시한 조직가이자 이론가이며 지도자였다.
책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내용이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력을 상대로 한 싸움이다. 피해자로서 그가 깨달은 것은, 이 나라가 돈으로 법을 사서 약자를 무릎 꿇리는 조폭적 금융패권주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키코와 비슷한 상품을 판매한 다른 나라의 경우, 대부분 은행의 사기나 불완전 판매라는 사실을 법적, 행정적으로 인정받았는데, 우리나라 법원과 금융당국은 철저히 은행 편을 들었다. 수사를 하다가 중단한 검찰도 은행 편이었다. 특히 지은이는 퇴직 뒤 금융회사로 재취업하는 ‘모피아’들의 전관예우 관행을 대표적인 금융 적폐로 적시한다. 또한 은행의 법적 대리인으로 선임된 김앤장을 비롯한 대형 로펌들이 어떻게 사건을 왜곡하고 결국 승리하는지 폭로한다.
요컨대 이 책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시대에, 실물경제의 최일선에서 수출기업을 일궈온 경영자가 온몸으로 겪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모순에 관한 이야기다. 그에게 금융권력은 총과 칼 대신 돈과 법을 든 조폭이었다. 천민자본주의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불공정한 시스템, 그 무한대의 권력을 상대로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지은이는 매일 바위를 들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오늘도 세상을 향해 외친다. “정의는 누가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내가 모여서 우리가 되고 우리가 함께 움직이면 세상은 바뀔 것이다.”
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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