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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술과 문학 사이, 연재소설 삽화

등록 2020-04-10 06:01

공성수 교수 ‘소설과 삽화의 예술사’
신문연재소설 삽화 대상 드문 연구
신소설부터 30년대 이상 박태원까지

최초의 삽화가들은 일본인들
고희동 이상범 안석주도 참여
“경계 허물고 재미 찾는 문학 되길”
소설과 삽화의 예술사: 한국 근대소설의 형성과 소설 삽화

공성수 지음/소명출판·2만8000원

<매일신보> 1912년 1월1일치에 실린 이해조의 신소설 <춘외춘>의 삽화로, 한국 최초의 신문연재소설 삽화로 꼽힌다.
<매일신보> 1912년 1월1일치에 실린 이해조의 신소설 <춘외춘>의 삽화로, 한국 최초의 신문연재소설 삽화로 꼽힌다.
신문연재소설의 시대가 있었다. 모든 일간지에 인기 작가의 소설이 많게는 하루에 두 편씩 실리고 독자들이 연재소설 읽는 재미에 신문 배달을 기다리던 시대. <고향>(이기영) <인간문제>(강경애) <임꺽정>(홍명희) 등 식민 시기 작품들에서부터 <장길산>(황석영) <객주>(김주영) <아리랑>(조정래) 같은 현대문학의 거봉들이 모두 신문연재를 통해 독자와 처음 만났다. 그리고 신문연재소설에는 연재분의 내용을 압축하고 분위기를 살리는 삽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그리는 이들 역시 역량 있는 중견 화가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독자들은 일급의 문학작품과 수준 높은 그림을 한목에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고는 했다.

<매일신보> 1913년 6월6일치 일재 조중환의 번안소설 <장한몽>에 실린 삽화. 텅 빈 대동강변의 풍경 그림으로 주인공들의 애절한 별리를 표현했다.
<매일신보> 1913년 6월6일치 일재 조중환의 번안소설 <장한몽>에 실린 삽화. 텅 빈 대동강변의 풍경 그림으로 주인공들의 애절한 별리를 표현했다.
연재소설 삽화가 지녔던 역할과 의미에 비해 그에 관한 연구는 뜻밖이다 싶을 정도로 소홀한 편이다. 연재소설이 문학 연구자들의 활발한 연구 대상이 되는 반면, 삽화는 그 분야가 미디어와 미술쪽에 걸쳐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새로 나온 공성수 경기대 교수의 저서 <소설과 삽화의 예술사>는 매우 귀하고 반가운 작업이다.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저본으로 삼고 후속 논문들을 더한 이 책은 1910년대 초반 신소설에서부터 1930년대 후반 탐정소설까지 신문연재소설 삽화의 현상과 흐름을 포착하고 그것이 문학사 및 예술사 전체와 맺는 관계를 밝혀 낸다.

1929년 <동아일보>에 릴레이로 연재된 최독견의 소설 <황원행>에 붙인 이승만의 삽화.
1929년 <동아일보>에 릴레이로 연재된 최독견의 소설 <황원행>에 붙인 이승만의 삽화.
한국 최초의 신문연재소설 삽화는 1912년 1월1일치 <매일신보>에 연재되기 시작한 이해조의 소설 <춘외춘>의 삽화였다. 삽화가는 야마시타 히토시, 일본 사람이었다. 당시 소설 삽화는 대부분 일본인 화가들이 맡았다. 공성수 교수에 따르면 “신소설 삽화는 대단히 스토리 지향적”이다. 소설 줄거리를 가능한 한 충실하게 알려주는 것이 신소설 삽화의 특징이었다.

동양화가 청전 이상범이 <동아일보> 릴레이 연재소설 <황원행>에 그린 삽화.
동양화가 청전 이상범이 <동아일보> 릴레이 연재소설 <황원행>에 그린 삽화.
역시 <매일신보>에 1913년 5월13일부터 연재된 일재 조중환의 번안소설 <장한몽>은 신소설의 자리를 빼앗고 “바야흐로 신파의 시대가 도래함을” 알린 작품이었다. 신소설 삽화에 비해 번안소설 삽화는 줄거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기보다는 “소설 서사의 정서적인 분위기나 인물의 내면 심리, 혹은 배경에 대한 묘사 같은, 중심 사건 이외의 부수적인 진술로부터 대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신소설 삽화가 이야기를 알려준다면(telling), 번안소설 삽화는 극적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showing) 독자로 하여금 의미를 완성하도록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동아일보> 연재소설 <황원행>에 이승만이 그린 삽화.
<동아일보> 연재소설 <황원행>에 이승만이 그린 삽화.
역시 <장한몽> 연재 삽화에서 금강석(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김중배의 손가락을 확대한 그림은 한국 신문연재소설 사상 “최초의 클로즈업 이미지”라고 공 교수는 설명한다. 그런가 하면 이보다 10년 뒤인 1923년 1월9일치 <동아일보>에 연재된 나도향 소설 <환희>의 삽화(석영 안석주 그림)는 “한국의 소설 삽화에서 최초로 등장한 누드화”로 꼽힌다.

석영 안석주가 <동아일보> 연재소설 <황원행>에 그린 삽화.
석영 안석주가 <동아일보> 연재소설 <황원행>에 그린 삽화.
한국 소설 삽화의 역사에서 1920년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매체 환경이 변화하면서 작품의 양적 확대와 질적 향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초창기 일본인 화가들에 의존하던 삽화계에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조선인 신예 삽화가들도 여럿 등장했다. 한국 최초의 근대 서양화가로 일컬어지는 고희동, 조각가로 더 잘 알려진 김복진, 당대 제일의 조선인 동양화가로 꼽혔던 청전 이상범과 심산 노수현, 그리고 해방 뒤까지 거의 유일한 직업적 전문 삽화가의 길을 걸었던 행인 이승만 등이 삽화 작업에 뛰어들었다. 이 가운데에서도 노래 ‘우리의 소원’의 작사가이자 동아·조선 양 신문 학예부장을 역임하고 시사만화가와 영화감독 등 팔방미인적 활동을 펼친 안석주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나도향 소설 <환희>로 처음 등장한 그는 춘원 이광수의 <재생>, 독견 최상덕의 <승방비곡> 등 대중적으로 성공한 소설의 삽화를 도맡아 그렸는데, “매 작품마다 새로운 화법을 시도”했으며 “인상주의, 입체파, 야수파, 초현실주의와 같은 서구의 다양한 회화 양식을 접목”시켜 연재소설 삽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1934년 8월22일치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박태원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동료 문인 이상이 그린 삽화.
1934년 8월22일치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박태원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동료 문인 이상이 그린 삽화.
한편 1910년대 소설 삽화가 주로 인물의 행동을 통해 그의 본성과 내면을 표현했다면, 1920년대 삽화는 자주 얼굴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곤 했다. 이를 두고 공 교수는 1910년대 소설 삽화와 연극의 교류를 반증하는 데 반해 1920년대 삽화는 “영화 미학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초창기에는 단지 소설 줄거리를 설명하는 보조적 역할을 맡았던 삽화는 점차 독립적 예술 양식으로 스스로를 재정립하게 된다. 삽화가 소설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때로는 “소설이 삽화를 참조하는 일”도 벌어진다. 1929년 6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된 <황원행>은 당대 최고 수준의 소설가 다섯 사람과 삽화가 다섯 사람이 릴레이로 연재를 이어 갔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1933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박태원의 소설 <반년간>에 박태원 자신이 그린 삽화.
1933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박태원의 소설 <반년간>에 박태원 자신이 그린 삽화.
1930년대 소설 삽화에서 이채로운 존재는 소설가 박태원과 이상이다. 박태원은 자신의 소설 ‘적멸’과 <반년간>에 자작 삽화를 그렸고, 이상은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자신의 소설 ‘날개’와 ‘동해’의 삽화를 직접 그렸다. 이들의 삽화에는 특히 문자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공 교수는 이것이 “근대의 미시적 풍경”의 포착이자 문자로 상징되는 권위와 질서에 대한 긴장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고 해석한다.

공 교수는 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학위논문을 쓸 때부터 ‘삽화가 어떻게 문학 연구의 대상이 되느냐’는 반응이 많았다”며 “문학이 너무 문학의 틀 안에만 갇혀 있다 보니 재미도 없어지고 독자도 떨어져 나가는 것인데, 이런 연구를 통해 장르간 경계를 허물고 잃어버린 문학 독자도 되찾아 올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그림 공성수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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