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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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창비(2019) <드라이>는 생수 한 병을 옆에 두고 읽어야 한다. 얼리사의 입술이 허옇게 말라 들어갈 때 나 역시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느꼈다. 청소년 소설 <드라이>는 물이 끊긴 6일 동안의 광란을 다룬 작품이다. 역병이 휩쓸고 있는 현실을 떠올리면 재난 소설의 설정은 허황된 상상만은 아니다. 읽는 내내 기시감이 들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영화를 염두에 두고 함께 쓴 소설 <드라이>는 난데없이 수도가 끊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갑자기 전기가 나간다면, 갑자기 모두가 눈이 멀어 보지 못한다면, 상황은 달라보여도 모두 같은 질문이다. 미약한 인간이 극단적 위협에 처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 소설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이다. 수자원 위기가 심각해지자 애리조나 주와 네바다 주가 저수지 방류협정을 파기하고 느닷없이 댐 수문을 닫는다. 캘리포니아 주로 강물이 유입되지 않자 거짓말처럼 단수가 시작된다. 고등학생 얼리사는 삼촌과 함께 대형마트에 가지만 사태는 심각하다. 눈이 벌게진 사람들이 사재기에 나섰고 생수도 탄산음료도 모두 동이 났다. 곧 해결되리라 낙관했지만 집에 있는 소량의 물이 떨어지고, 변기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온다. 단수가 이틀째를 넘기자 얼리사의 부모는 해변에 설치한 담수화 설비에서 물을 얻어오겠다고 나간다. 다음날이 되어도 엄마아빠가 돌아오지 않자 얼리사는 동생을 데리고 이웃집 남학생 켈턴과 함께 해변으로 가지만 어디에도 사람은 없다. 담수화 설비가 오류를 일으키자 물을 두고 다툼이 벌어져 군중이 폭도로 변한 것이다. 그날 저녁 마을 사람들은 이런 사태를 대비해 물을 보관하고 있는 켈턴의 집으로 쳐들어온다. 켈턴의 아버지는 집을 지키고자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아이들은 재난대피소로 만들어 놓은 벙커로 향한다. 소설은 얼리사와 켈턴 그리고 재키와 헨리라는 네 명의 십대가 파국을 향해 끝없이 질주하며 어떻게 맞서고 야합하는지를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마치 영화를 보듯 망설일 틈도 없이 독자를 몰고 간다. “인간이 짐승이 되기까지 사흘이면 족하다.” 재키의 말이다. 평화로웠던 마을은 단수 사흘 만에 미쳐간다. 마치 딴사람이 된 듯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약탈을 서슴지 않는다. 단수 앞에서 인간은 너무도 쉽게 워터 좀비가 되어버린다. 물을 찾아 전력 질주하던 아이들은 서서히 절망에 이른다.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가는 순간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힘을 낼 때가 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친구와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다. 인간은 언제든 워터 좀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절망 가운데 스스로 빛이 될 수도 있다. 극단의 상황에서 인간을 구하는 건 휴머니티뿐이며 인생은 아주 먼 길이니 우리는 서로를 도와야 한다. 청소년.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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