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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갱신하고 수정하는 인간과 세계

등록 2020-03-27 06:00수정 2020-03-27 09:43

[책&생각] 책거리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과학책 <코스모스>의 지은이 칼 세이건은 보수적인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었고 인류의 진보를 믿었습니다. 그가 쓴 글들 중 상당수가 핵전쟁, 핵겨울, 환경파괴, 여성의 권리, 언론의 자유 등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원래 칼 세이건은 집안에서 진보적이거나 페미니즘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죠. 그가 바뀐 건 앤 드루얀을 만나 사랑에 빠진 뒤부터였다고 합니다. 생각한 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배웠다는 겁니다.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에 나오는 9000년 전의 고대 여신상 사진에, 지은이 앤 드루얀은 의미심장한 사진설명을 달아두었더군요. “어떤 고고학자들은 이를 풍요의 여신으로 해석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차탈회위크 주민들이 자기네 공동체의 여성 장로들을 기린 것이라고 해석한다.” 과학을 위한 기본적 태도로로서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할 것. 권위에 대해서도”라고 적었습니다. 과학의 위대한 점 중 하나는 스스로 끝없이 갱신하고 수정한다는 점입니다. 열린 태도는 기본이겠죠.

뇌신경과학자로서 트랜스젠더였던 벤 바레스는 43살 때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뒤 학계의 성차별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밝힙니다. 고고학자 거다 러너는 역사적으로 남성적 헤게모니가 여성의 지적 작업을 배제했으며 ‘차이’를 명분으로 지배를 정당화했다고 풀이합니다. 그렇다면 타자를 통제하려는 가부장적 세계의 문제를 인식하게 된 인류가 여기서 벗어나는 일 또한 과학적 진보라고 여겨집니다. 앤 드루얀은 잔혹했던 인도의 아소카 왕이 훗날 여성도 교육을 받도록 하는 등 자애로운 군주가 되었다는 점을 우주의 서사 속에 녹여놓았습니다. 또 다른 세계를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물결치는 요즘 아닙니까. 세계의 변화는 개개인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장치는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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