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관악산 자락 낙성대 길상사에서 정위 스님이 손수 장만한 갖은 야채에 뒷뜰에서 갓따온 꽃송이로 고명을 올린 매화꽃비빔밥을 차려내 보이고 있다. 사진 김경애 기자
“길상사 앞 뒤뜰에 매화가 활짝 피었대요. 정위 스님께서 매화꽃비빔밥 한 술 맛보러 오라셔요.”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을 펴낸 1인 출판사 브레드의 이나래씨가 지난 겨울의 약속을 잊지 않고 초대를 했다. 지난 22일 찾아간 서울대 후문 쪽 낙성대 길상사는 소문대로 현대적 감각의 예술공간에 가까웠다. 지하1층에 자리한 카페 지대방에도, 도예가 변승훈 작가가 만든 1층 앞마당의 도자 부조 미륵불 위에도, 흙바닥으로 마감한 계단의 참에도, 3층 법당의 목불상 아래에도 온통 매화꽃이 화사했다.
“아침에 뒤뜰의 오래된 매화나무 가지치기를 했어요. 청매여서 더 향이 짙지요.”
직접 끓인 대추차를 내온 정위 스님은 경내 구경을 권하고는 주방에서 비빔밥 준비를 서둘렀다. 굳이 재료 준비나 조리법에 대해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딱히 사찰음식이라고 배운 적도 없고, 사찰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에요. 그저 텃밭에서 내 손으로 키운 제철 재료로 정성스럽게 정갈하게 건강하게 만들어 먹으려고 했어요. 그러니 누구나 취향대로 할 수 있어요.”
봄의 향기를 오감으로 맛보게 하는 정위 스님의 매화꽃비빔밥은 입소문으로 퍼져 책까지 내게 만든 ‘특별한 음식’이다. 사진 김경애 기자
매화꽃비빔밥에 곁들여 낸 정위 스님의 쑥국은 시원한 무를 채썰어 넣어 한결 맛이 시원하고 깔끔하다. 사진 김경애 기자
하지만, 매화꽃비빔밥은 정위 스님을 ‘한국의 타샤 튜더’로 불리게 한 ‘특별한 요리’라 할 수 있다. “2007년께 라이프스타일 전문 잡지에서 기자로 일할 때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매화꽃비빔밥 얘기를 듣고 그 맛이 너무 궁금해서 무작정 길상사를 찾아왔어요. 삼고초려 끝에 정위 스님만의 일상 레시피를 잡지에 연재하는 데 성공했죠.”(이나래)
기자가 문답 형식으로 정리해 소개한 레시피는 인기를 끌어 28개월동안 연재했고 2010년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중앙엠엔비)으로 묶여 나왔다. 그 사이 절판됐으나 입소문을 타고 재출간 요청이 이어지자 지난해 11월 같은 제목으로 개정판을 낸 것이다. 입소문이 난 이유 중에는 음식만이 아니라 그릇이며 보자기며 찻잔 받침이며 손수 수를 놓고 박음질을 해서 만들거나 수집해온 소품들로 꾸민 카페 지대방의 빼어난 감각도 큰몫을 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정위 스님은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해 묘행 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았다. 1982년 묘행 스님이 길상사를 창건하자 함께 정착해 지금껏 주지로 모시고 봉양하고 있다. 150평 남짓 터에 허름한 한옥이었던 절은 1996년 지금의 현대식 3층 건물로 재창건했다.
“지난해 봄 속가의 어머니께서 101살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40여년 전 출가하는 딸에게 어머니께서 무명 한 필과 흰 무명실 한 꾸러미를 주셨어요. 혼자 있는 시간에 수를 놓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게 정화되는 느낌이 좋았어요.”
‘정위 스님의 가벼운 밥상’ 개정판 표지. 사진 브레드 출판사
‘정위 스님의 자수 정원’ 표지. 사진 브레드 출판사
지난해 7월 펴낸 <정위 스님의 자수정원>(브레드)은 어머니에게 헌정한 책이다. 20여년 자투리 천을 이용해 만든 40여점의 수예품을 소개했다. 자수 솜씨 역시 일찍이 입소문이 나서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몰려와 종종 자수 강습을 열기도 했다. 2017년 지대방에서 ‘옛날 언니들의 혼수품 십자수전’을 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도 6개월 과정으로 ‘수요자수반’을 개설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중단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이 제철 음식으로나마 계절의 기운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매화꽃 다 지기 전에 널리 소개해주세요.” (02)883-7354.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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