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미하우 스키빈스키 지음, 이지원 옮김, 알라 반크로프트 그림/사계절·1만4000원
1939년 9월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날름대던 전쟁의 불길이 드디어 유럽을 집어삼켰다. 당시 8살 폴란드 소년 미하우 스키빈스키는 여름방학 내내 하루 한 문장씩 일기를 썼다. 2학년으로 올라가기 위한 방학 숙제였다. 평생 스키빈스키가 품고 있었던 일기장이 80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소년의 손글씨에 젊은 화가 알라 반크로프트(23)의 그림이 더해져 아름다운 책으로 탄생한 것.
8살 폴란드 소년 미하우 스키빈스키는 1939년 9월9일 “비행기들이 계속 날아다닌다”고 일기에 적었다. 바로 이날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이의 아버지는 나치와의 전투에서 전사한다. 사계절 제공
“동생과 선생님과 함께 시냇가에 갔다”(1939년 7월15일)로 시작한 일기는 “전쟁이 시작되었다”(9월1일), “우리집 가까이로 폭탄이 떨어졌다”(9월6일)처럼 숨막히는 사건으로 치닫다가 미완의 침묵으로 끝난다. 무서운 전투가 일어날 거라는 소문, 대포 쏘는 소리, 집 위로 쏟아지는 포탄 파편을 묘사하던 소년은 9월16일부터는 날짜만 쓰고 더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커다란 애벌레를 발견해서 정원에 놓아 주었다”(7월23일),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다”(7월28일), “아닌(소년이 방학을 보낸 곳)의 하늘에 폭풍우가 두 번 지나갔다”(8월9일),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8월25일)처럼 미소를 자아내는, 어린이다운 투명한 문장 한 켠엔 슬픔의 말줄임표가 찍혀 있다. 소년은 8월29일 일기에 “아빠가 나를 보러 왔다”고 했다. 그것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버지는 열흘 뒤인 9월9일 전사했다.
아이의 단순한 문장과 잘 어울리는 색감 풍성한 반크로프트의 그림은 전쟁의 참혹함과 소란을 고요함으로 잠재운다. 올해 90살을 맞은 스키빈스키는 “고요한 노인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고 한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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