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된 수학자
모리타 마사오 글, 와키사카 가쓰지 그림, 박종진 옮김/출판놀이·1만3500원
“나는 개미가 되었다.”
솔깃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개미가 된 수학자>는 묘하게 빠져드는 책이다. 문학인 듯 철학인 듯 읊조리는 개미를 따라 이상한 수학의 나라로 이끈다. 이재복 아동문학가를 주축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하겠다”는 취지로 문학인 100여명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출판놀이’의 4번째 책이다. 지은이는 일본의 30대 젊은 수학자 모리타 마사오. 그는 수학이라는 고난도 악보로 감동을 자아내는 연주를 하겠다는 포부로 수학의 매력을 전파하고 있다. 소리와 냄새와 빛과 맛이 뒤섞인 땅 위 2㎜ 세계로 간 개미 수학자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가상 문답으로 꾸몄다.)
-삼각형을 생각하다 삼각형이 된 적도 있죠? 이번에는 어쩌다가 개미가 되었죠?
”‘소나무는 소나무에게 배워라’라는 속담이 있죠. 소나무를 알려면 완전히 소나무가 될 정도로 빠져야 해요. 뒷산을 천천히 걷다가 개미들이 줄지어 가는 걸 봤지요. 숫자나 도형을 개미는 어떻게 느낄까 가만히 지켜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개미가 되어 있었어요.”
-인간보다 일억년도 더 오래전부터 살아온 개미는 숫자를 알던가요?
“그게 말입니다. 아스파라거스 열매가 7개나 떨어진 걸 발견해 친구 개미한테 자랑스레 알려줬죠. 그런데 그 친구는 ‘일곱 개’란 이름의 열매는 못 들어봤답니다. ‘2개째 열매’를 나른다고 하니 ‘두 개째’라는 이름의 열매도 못 들어봤답니다. 이런 대화가 7번 오갔지요. 얼마나 답답하던지….”
-숫자는 인간에게만 통용되는 언어인 걸까요?
“으음, 손가락이 없다면 숫자를 만들어냈을까요. 또 컴퍼스나 눈금자를 이용할 손이 없다면 원이나 삼각형을 생각했을까요. 한꺼번에 여러 개를 볼 수 있는 시력이 없다면요? 인간의 숫자는 인간의 몸에 맞춘 언어, 개미의 몸에 맞지 않는 세계가 아닐까 합니다.”
-그럼 숫자나 도형 말고 다른 차원의 ‘개미의 수학’은 없었나요?
“어느 날 ‘개미 현자’를 만났어요. 놀랍게도 아침이슬을 헤아리며 말했어요. 우리 숫자에는 색과 빛, 그리고 움직임이 있다고요. 눈부실 정도로 하얀 1도 있고, 재빠르고 파란 1도 있고. 그래서 달이 차고 기우는 비율, 강물이 흐르는 속도를 다 헤아린다고요. 방대한 계산을 하고도 틀리는 인간과 달리 개미는 그들의 수학으로 비가 언제 올지 정확하게 계산해내는 이유죠.”
-수학자로 다시 돌아온다면, 수학을 지레 포기한 ‘수포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문과대학 학부생이었던 저는 뒤늦게 수학에 빠져서 도쿄대 수학과를 다시 다녔지요. 마이너스란 숫자도 없던 시절이 있었지요. 개미나 해파리, 풀이나 나무들의 수학을 이해할 날이 오지 말란 법이 있나요? 개미가 되어보니, 우린 거대한 수학의 우주 입구에 서 있어요. 여러분이 수학 우주의 문을 열어보세요. 문학의 강단으로, 감성의 결로, 철학의 근성으로. 문제풀이 너머 수학의 기쁨이 있어요.” 초등 4학년부터.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출판놀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