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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빨강머리 앤’ 국내 첫 소개한 원로 작가 신지식 소천

등록 2020-03-17 19:13수정 2020-03-18 00:15

12일 별세…1960년대 ‘앤’ 첫 번역
<하얀 길> 등 감수성 짙은 대표작 다수
원로 청소년 문학가 고 신지식 선생. 이상희 시인 제공
원로 청소년 문학가 고 신지식 선생. 이상희 시인 제공
‘빨강머리 앤’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원로 청소년 문학가 신지식씨가 지난 12일 영원한 순수의 세계로 떠났다. 향년 90. 최근 몇달동안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그의 장례식은 14일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다. 1930년 서울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고인은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목도한 세상의 비정함, 그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의 고귀한 아름다움을 문학으로 표현했다. 1956년 어머니를 일찍 여읜 슬픔을 담은 <하얀 길>로 등단해 <감이 익을 무렵>(1958) <가려진 별들>(1962) <가는 날 오는 날>(1968) <날개 치는 작은 새>(1973) 등의 소설 작품을 남겼다. 시인이자 그림책 작가인 이상희씨는 “당시 동화가 잘 다루지 않던 청소년의 이야기를 예민하고 풋풋한 감수성으로 풀어낸 독보적 작가였다”며 “남성 작가들이 대부분인 시절에 글쓰기를 꿈꿨던 소녀들이 선망하는 존재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문학적 역할은 한국전쟁과 계속된 정치적 혼란, 산업화의 가파른 길목에서 상처받은 ‘어린 벗’들에게 빨강머리 앤이란 존재를 알려줬다는 데 방점이 찍힌다. 1953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의 한 헌책방에서 <빨강머리 앤> 일본어 문고판을 처음 발견한 고인은 1962년부터 자신이 교사로 일하던 이화여고 교지 <거울>에 매주 한편씩 ‘앤 셜리’ 이야기를 번역해 실었다. 학생들의 폭발적 인기 속에서 연재가 끝난 이듬해 단행본으로도 출간돼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빨강머리 앤> 10권을 모두 번역함으로써, 사랑하고 결혼하고 일가를 이루는 앤의 한평생을 전했던 고인은 1999년에야 앤의 고향,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방문하는 ‘필생의 꿈’을 이뤘다. 세월이 흘러도 식지 않는 앤의 인기처럼, 고인이 한국의 어린 독자들에게 준 위로의 힘도 빛이 바래지 않을 것 같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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