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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능력있는 자만이 활용가능한 중국 고전의 대명사

등록 2006-01-05 18:19수정 2006-01-06 15:46

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산해경
장수철 옮김. 현암사 펴냄

황지우는 ‘산경’이라는 시의 말머리에 이렇게 썼다. “무릇 경전은 여행이다. 없는 곳에 대한 지도이므로.” 이 시구는 분명 모순이다. 없는 곳을, 그리하여 그 누구도 발을 디디지 못했을 곳의 지형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시에 나온 ‘경전’이란 낱말은 ‘신화’로 바꿔야 마땅하다. 모름지기 신화는 여행이기 마련이다. 가보지도 않은 곳에 대한 상상의 포획이므로.

<산해경> 읽기는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다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기산이 있다. 산 남쪽에는 옥이 많이 나고 북쪽에는 괴상한 나무가 많이 자란다. …이곳의 어떤 새는 생김새가 닭 같은데 머리가 셋이며 눈은 여섯 개이고 다리가 여섯, 날개가 셋이다. 그 이름을 창부라고 하며 이것을 먹으면 잠이 없어진다.” ‘산경’은 내내 이런 식의 상투어로 수놓아져 있다.

중국 고전의 맨 앞자리에 놓인 책이라 하길래 마음먹고 읽었지만, 금세 졸가리를 놓치고 만다. 덮어버리고 다른 책을 읽을까 싶다가도 내친 김에 읽어보자고 다독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본문 내용만으로는 요령부득이다. 그나마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연변학자의 의뭉스럽기까지 한 각주가 있어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단원산에는 유가 있는데, 암수 한 몸으로 이 고기를 먹으면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옮긴이는 이렇게 토를 달아놓았다. 인류가 부계 씨족사회가 되면서 일부일처제를 실행하게 되었는데, 이때 남성이나 여성 모두 상당한 ‘성 자유’를 잃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질투하지 않는 약 처방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칠오산에는 빛이 나타났다 숨었다 하는데 해가 머물기 때문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두고는 당시 사람들은 태양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여행한다고 생각해 “태양이 숙박하는 산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여겼다고 설명했다.

‘해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숨통이 트인다. 중국 신화 책을 보며 익혀둔 낯익은 이름들과 사건들이 나오는 탓이다. 황제와 ‘맞짱’을 뜬 형천과 치우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나오고, ‘여왜보천’의 주인공 여왜도 짧게나마 등장한다. 태양을 쫓아갔던 과보 역시 재미난 인물이다. 이 거인은 달리다가 갈증이 나 황하와 위수의 물을 들이켰으나 이것도 부족했다고 한다. 세계의 중심(Axis Mundi)으로서 세계수도 나온다. “높이가 100길로 가지가 없고 위는 아홉갈래로 빙글빙글 구부러져 있고 아래는 뿌리가 아홉갈래로 뒤엉켜 있”는 건목이 바로 그것이다.

<산해경>을 읽고나서 황지우의 ‘산경’을 다시 읽었다. 시가 어떻게 달리 읽히나 궁금해서였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산경’이야말로 1990년대의 담시였다. 신화적 상상력에 기대 현실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지 않은가. 생김새가 돼지 같은데, 입이 앞뒤로 둘이고 오리발을 하고 있으며, 사람이 되다 만 개 짖는 소리 내고, 나타나면 고을에 큰 도둑이 든단다. 누구냐고? 바로 회장(蛔丈)이다. 정재서가 지적한 바 있듯, 정위새에 얽힌 신화를 차용해 분단의 비극을 형상화한 시구는 압권이다. 누구는 읽어도 무슨 뜻인지 도통 알아차릴 수 없는데, 누구는 그것을 바탕으로 빼어난 시를 써낸다. 왜 그럴까. <산해경>에 그 답이 있다. “능력이 있는 자는 이것을 충분히 이용할 것이고 우둔한 자는 잘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새해에는 ‘능력 있는’ 독자가 되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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