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돈벌러 온 지 10년, 서울 근교 화원에서 일하는 40대 중반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나짐과 식당에서 일하는 30대 중반의 아내 돌레나(가명). 웃는 모습이 너무 순해 바라보는 사람 마음도 덩달아 맑아지게 하지만 얼굴을 공개하길 꺼리는 이들 부부는 딸 둘을 고향에 둔 이산가족이다.
한국에서 일한 지 10년째
처음엔 임금체불·장시간 노동에 고생
좋은 사장 만나 화원서 장미꽃 키우며 행복 찾아
소원은 “방글라데시 고향서 두 딸과 함께 사는 것”
웃음 맑은 그들은 우리 공동체의 식구
처음엔 임금체불·장시간 노동에 고생
좋은 사장 만나 화원서 장미꽃 키우며 행복 찾아
소원은 “방글라데시 고향서 두 딸과 함께 사는 것”
웃음 맑은 그들은 우리 공동체의 식구
권은정의 인터뷰 무제한/이주노동자 나짐·돌레나 부부 (기사 내용 중에 나오는 모든 이름과 고유명사는 안전상의 이유로 바꾼 것이다. 사실대로 싣지 못한 점이 가슴 아프지만 혹시라도 불이익이 따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독자 여러분도 기꺼이 양해하시리라 믿는다.) 식당에서 일하는 부인 돌레나를 기다리며 나짐과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섣달 그믐날 저녁의 바깥날씨는 몹시 추웠다.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한 상담센터에서 이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초라한 사무실의 문틈으로 바람이 숭숭 뚫고 들어왔지만 우리 중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바람쯤이야. 단속의 칼바람을 피해 10년 세월을 보낸 나짐에게 겨울바람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처음엔 기계부속 만드는 일 했어요. 그리고 스틸 파이프 만드는 일도 하고….” 애초 방글라데시에서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온 나짐의 이야기는 우리가 늘 들어온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장시간 노동에 임금체불은 참을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 사장님 나한테 자꾸 **, *** 하고 욕했어요. 욕 많이 했어요.”
몸이 힘든 것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게 마음이 힘든 것이었다. 우리나라 일터에서는 그런 욕이 일상어라고 둘러대지만 그건 가해자의 말일뿐이다. 종일 이유 없이 욕을 먹어야 하는 가련한 신세가 되어보라. 나짐이 합법적인 연수생에서 불법체류자로 ‘인위적인 자격상실자’가 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 2년은 이곳저곳에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화원에서 일한다. 화원에서 꽃을 키우는 일을 한 지 어언 8년. 한국인이라도 이렇게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기가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 사장님 좋아요. 사모님도 좋아요. 그래서 여기서 오래 일해요.” 나짐은 한국말이 능숙하다. 또 그만큼 이곳 생활에 대해서도 많이 안다. 그의 경력으로 보건대 다른 제조회사에 가서 일하면 지금 받는 월급보다 훨씬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냥 여기서 죽 일하고 있단다. 자기를 친가족처럼 잘 대해주는 사장님을 버리고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인은 식당서 설거지일 해 “내가 가면 누가 장미 키워요? 장미 꺾어서 열개 묶어 한단으로 만들어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시장에 팔아요. 우리 사장님 일 잘 못해요. 그래서 돈도 많이 못 벌어요. 내가 있어야해요.” 나짐은 자신의 근무조건이 얼마나 좋은지 계속 자랑이다. 사장님이 화원 옆에다가 살집을 마련해 준 모양이다. “집도 좋아요. 기름보일러 방이에요. 에어컨도 있어요. 침대도 있어요.” 음, 나보다 낫네. 근데 나짐이 에어컨 있는 방에서 산다는 말에 내 마음이 왜 이리 푸근해지지? 장미는 언제가 제일 바쁜 철이냐, 색깔은 뭐가 제일 예쁘냐… 등등 장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부인 돌레나가 들어온다. 부인은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고 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8시 넘어서야 일이 끝난다. 돌레나는 한국 온 지 이제 5년이 되었다. 처음엔 핸드폰 만드는 공장에도 있어 봤고 책 만드는 인쇄소에서 일한 적도 있다. 단속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야 하기 때문에 직업이 안정적일 수가 없다. 식당 일이 쉽지는 않지만 맞벌이 한다는 사실이 즐겁다. 남편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부부는 5년간이나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났다. “처음에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마누라 보고 싶고 또 아이들 보고 싶고, 그래서 마음 많이 아팠어요.” 돌레나는 고무장갑 끼고 그릇을 주로 씻지만 많이 바쁠 때는 음식을 만드는 일도 한다. 그가 가장 잘 만드는 음식은? “설렁탕, 갈비탕, 된장찌개, 순두부, 코다리. 다 잘 만들어요. 코다리 참 맛있어요.” 제일 무서운 한국말은 ‘단속’ 한국음식을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 돌레나는 방글라데시 음식 중에는 김치보다 매운 게 더 많다고 설명해준다. 돌레나의 경우 홀 서빙은 못한다. 같은 이주노동자라도 그런 일은 조선족 동포만 할 수 있다. 부부는 얘기 도중 서로 쳐다보며 자주 웃는다. 웃는 모습이 어찌나 순한지 그걸 바라보는 마음도 덩달아 맑아진다. 부부가 함께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이산가족이다. 딸 둘은 방글라데시에 있다. 열일곱 나는 큰딸과 열한 살인 둘째딸. 얼마 전 큰딸은 출가시켰다. 엄마가 아빠와 결혼하던 때와 똑같은 나이에 시집을 보냈다. 문제는 둘째딸이다. 지금도 엄마 아빠한테 오겠다고 떼를 쓰는 둘째는 한국에 살다가 방글라데시로 돌아갔다. “재작년에 보냈어요. 여기 있다가 언제 단속될지 모르잖아요. 여기서는 영어도 배울 수가 없으니…” 나짐의 딸 말라카는 한국에서 유치원을 다녔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한국어 솜씨는 어른들보다 훨씬 나았다. 그런데 아이의 한국어가 능숙하면 할수록 아빠의 걱정은 커졌다. 아예 한국 애처럼 살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한국에서 쫓겨난다면 어찌한단 말인가? 차라리 그보다는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아픔이 나중을 위해서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미리 보내버렸다. 고향에 계신 형님네 가족들이 딸을 돌봐주고 있다. 아무리 한국어가 서툰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단속’이란 단어는 참으로 분명하게 들린다. 단속, 언제 단속해요? 언제 단속 끝나요? 온 신경이 ‘단속’이란 말에 맞춰져 있다. 단속이 시작되면 일단 모든 출입을 삼간다. 나짐은 단속 때만 되면 낮에는 나다닐 생각을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물건은 사장님이 사준다. 문득 나의 외국생활이 떠올랐다. 합법적으로 살더라도 체류기간 연장스탬프를 받으러 이민국으로 갈 때면 괜히 긴장이 되었다. 남의 나라에 산다는 것은 마치 얇은 얼음판 위에 서 다니는 느낌이다. 하물며 미등록 체류자로 산다는 게 얼마나 가슴 졸이는 일일까. 지금 살고 있는 터전이 알지 못하는 어느 순간, 완전히 뒤집혀지고 모든 계획과 꿈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수 있다. 더구나 이주노동자들은 단속의 불안감에만 시달리는 게 아니다. 그들은 노동을 착취당하고도 댓가를 요구할 권리마저 없다. 나짐, 돌레나, 다른 친구들 모두가 겪어온 바다. 하지만 이들은 크게 원망도 안한다. 만나는 사람들이 잘 대해 주느냐고 물어보았다. “웃는 사람도 있고 안 웃는 사람도 있어요.” 나짐의 말에 돌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이들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정말 싫어한다는 뜻이 된다. “그 사람 좋은 사람 아니에요.” 살면서 어렵고 힘든 점이 한두 가지였을까, 그러나 이들 부부는 한결같이 이 땅에 대해 긍정적이다. 뭐가 그리 좋은가? “다 좋아요.” 나짐이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다 좋다니, 뭐가 다 좋은 것인가? 바라는 게 너무 적거나 받아본 게 너무 적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부부는 욕심 없이 사는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짐은 아침이면 사장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하루 일을 챙긴다고 한다. 그 커피는 사장이 타준단다. 나짐은 행운아? 산업재해에다가 임금체불이 일상사가 된 한국에서 50만 아주노동자 중 정말 그는 드물게 복 받은 사람이 아닌가? 순간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당연하고도 합당한 것이 행운이라니, 오히려 나짐과 같은 경우를 마주친 내가 행운이다! 나짐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어보았다. “우리 아이랑 같이 사는 거지요. 같이 모여 사는 거.” 사실 나짐은 아들을 하나 낳고 싶다. 하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이 마당에서 그것은 욕심이란다. 착취 당하고도 대가 요구 못해 그는 “힘 있을 때 까지” 한국에서 일하고 그 다음엔 방글라데시로 돌아가 다카에서 버스타고 다섯 시간 가면 나타나는 고향마을에 가서 살고 싶다. 젊어서 죽도록 고생한 돈으로 작은 가게 하나 내고 그럭저럭 별 근심 없이 별 욕심 없이 살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권은정/전문 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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