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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국이 전체주의로 나아간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등록 2020-03-04 15:03수정 2020-03-04 15:10

‘시녀 이야기’ ‘증언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서면 인터뷰
“미국의 많은 주에서 최선을 다해 여성 권리 후퇴시키고 있어”
“트럼프 시대와 ‘시녀 이야기’는 연관성 있다”
<증언들>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Liamsharp
<증언들>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Liamsharp

디스토피아 소설 <시녀 이야기>(1985)의 속편 <증언들>로 지난해 부커상을 받은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한겨레>를 비롯한 한국 언론과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그는 30여년 만에 속편을 내게 된 계기, 이 두 연작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등에 관해 솔직하고 흥미로운 답변을 들려주었다.

-<증언들>1985년에 출간된 <시녀이야기>의 후속작이다. 후속작을 내놓기까지 오랜 세월이 소요된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전작이 큰 인기를 얻어서 후속작을 쓰는데 부담스럽지는 않았는가?

“<시녀이야기>와 동일한 시기, 똑같은 목소리로 오브프레드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가는 모작에 그칠 것 같았다. 미래로 건너가 세 명의 화자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작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전작의 성공 탓에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결국 이렇게 후속작을 써냈다. 딱히 부담은 없었다. 이 나이쯤 되면 부담스러울 게 없다. 후속작을 쓰는 중이라고 말했을 때도 출판사에서는 기대보다 깜짝 놀란 반응이었다.”

-30여년이라는 세월을 건너 후속작을 쓰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무엇인가? 그 간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관련성을 내포하면서도 개연성 있는 ‘좋은’ 작품을 쓰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길리어드 같은 사회에서 실제 벌어질 만한 일과 관련이 깊은 동시에 충분히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 간 세상이 확실히 변했지만 주로 기술 분야에 국한된다. 그런데 길리어드의 여성들은 어차피 휴대폰은커녕, 심지어 책도 볼 수 없다. 현재로서는 미래에 어떤 기술이 생겨날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의 모습에 ‘기술’을 집어넣는 도박은 하지 않는다.”

-화자가 3명으로 늘었다. 전제정 붕괴의 필연성을 드러내려 했다면 리디아가 주인공인 것 같다. 캐릭터도 입체적이다. 아그네스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성장한다. 니콜의 비중과 역할이 다소 주변적인 듯한데. 여성 화자 3명으로 각각 말하려 했던 게 뭔가.

“니콜은 지엽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녀를 빼면 줄거리가 완성될 수 없다. 사건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외부의 누군가가 내부로 들어왔다가 메시지 전달자의 역할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리디아 아주머니나 아그네스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니콜의 역할은 실제 저항 운동가들을 모델로 했다. 세 명의 인물을 선택한 이유는 그들 모두 <시녀이야기>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16년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길리어드는 내부의 비밀이 폭로되면서 무너진다. 왜 안으로부터의 저항세력의 형성과 반란은 생각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소설 속 길리어드와 지금 현실은 많이 다르지만, 거기에 나오는 여성에 대한 구속과 억압은 현실에 존재하는 요소들이 극대화한 형태인 것 같다. 조혼, 대리모, 성폭력 등은 지금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길리어드의 모습을 이렇게 구상한 이유는?

“<증언들>은 TV 시리즈가 아닌 원작 소설의 속편이다. <시녀이야기>에는 저항세력의 형성이나 반란으로 발전할 내용이 별로 없다. 길리어드의 모습을 왜 그렇게 구상했는지는 길리어드의 심장부가 어디인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하버드 대학의 본고장이자 자유 민주주의의 보루인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지금은 전보다 기세가 꺾였지만 한때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는 말을 즐겨 하던 사람들의 본거지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치지 않은 일을 전혀 염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아주 최근에서야 대두된 여성의 권리는 그 기반이 매우 미약하다. 어느 누구도 여성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사라질지도 모르는 기록(리디아아주머니)과 증언록으로 전개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기록이라는 건 그렇게 되기 마련 아닌가. 어떤 기록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사라지는 법이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1948년 영국이 전체주의 국가가 되는 미래를 상상했는데, 당신은 캐나다 작가이면서 왜 미국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소설을 썼는가. 미국의 어떤 측면이 전체주의 국가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인가. 백인 남성 우월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를 말하고 싶은 것인가?

“미국은 이미 길리어드의 근간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다. 많은 주에서 최선을 다해 여성의 권리를 퇴보시키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이런 자문을 해보길 바랐다. ‘미국이 전체주의로 나아간다면 어떤 모습의 전체주의 국가가 될 것인가?’”

-<시녀 이야기>를 원작으로 삼은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이 속편 <증언들>을 쓰는 데 생산적인 자극과 영감 또는 아이디어를 주었는지? 주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주었는지? 또한 <시녀 이야기>에 대한 독자들의 질문이 이 책에 영감을 주었다고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는지?

“종종 언급했듯이 TV 시리즈는 아주 좋았다. 그건 원작과 동일한 시기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지만 <증언들>은 그로부터 16년 후 미래를 다루고 있어 서로 다르다. 가장 최근에 받은 질문은 ‘희망이 있는가?’였다. 그건 개괄적인 질문에 해당한다. 작품 전반을 망라해 구체적인 질문들을 받았는데 대다수가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을 궁금해했다.”

-<시녀 이야기><증언들>에서 묘사된 대로 미국과 같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가 남성 지배 전체주의 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실제로 있다고 보시는지? 아니면 노골적인 전체주의 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간 투쟁을 통해 확보해 온 여성의 자유와 권리가 크게 훼손되고 억압당하는 반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시는지?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고, 어디서든 가능한 일이다. 최근 미 상원의 행동도 고무적이지 않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반동은 이미 미국 일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작품은 일관되게 전체주의에 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전체주의는 왜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가?

“전체주의 붕괴가 절대적으로 불가피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상황이 나빠지고 체제를 지탱할 수 없게 되어 붕괴하는 경우가 많다.”

-당신의 작품을 비롯해 디스토피아 소설이 오늘날 특히 영어권에서 인기 있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정부가 하는 일에 경각심을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아, <시녀이야기>가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둘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는 유권자를 향해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지지하는 이유에 따라서 다르다. 그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주리라 생각하는 지지자가 있는데, 그럴 가망이 전혀 없다. 일부 백인 우월주의자들도 트럼프를 지지한다. 그 사람들은 대개 여성 혐오까지 겸하고 마찬가지로 과학도 경멸하기 때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여성이 사실에 근거해 어떠한 추론을 펼친다고 귀를 기울일 사람들이 아니다.”

-최근 이슈가 된 일련의 미투 현상, 페미니즘 운동을 어떻게 지켜봤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사회 현상은 당신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내 연배의 사람들은 70년대 제2세대 페미니즘도 겪었겠지만 이번에는 소셜 미디어로 일어났다. 이전에도 백래시는 있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엔 70년대의 페미니즘 물결과 80년대의 백래시의 결과가 이처럼 큰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시녀이야기>는 백래시 기간에 쓰여진 작품이다. 종류를 막론하고 인권은 계속해서 분투 중인 사안이며 또한 많은 장애물에 직면한 문제이다. 그리고 여성의 권리 또한 인권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봐야할 사안이다.”

-당신 소설에서도 기후 변화의 심각성이 언급된다. 기후 변화에 대해 당신은 어떤 메세지를 던지고 싶은가.

“기후 변화와 관련해 썼던 <미친 아담> 3부작이 있지만 <시녀이야기> 및 <증언들>과 관련해서 말해보겠다. 사회적 격변과 혼돈의 시기에 전체주의 정부들이 자주 득세한다. 화재, 홍수, 가뭄, 외래 유입종으로 발현되는 기후 위기는 곧 식량부족, 불안, 공포, 자원 전쟁 등을 의미한다. 그래서 상황이 불안정해질수록 길리어드를 비롯한 여타 전체주의로 변모할 가능성이 커진다.”

-<증언들>은 길리어드 정권의 끝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 세계관을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후속작이나 혹은 프리퀄 등에 대한 계획은 없는가?

“그럴 리가! 시간이 촉박하다. 내 나이가 여든인데 소설을 쓰려면 첫 구상에서부터 집필까지 보통 3~4년이 걸린다. 어쩌면 조만간 그런 장기 프로젝트는 엄두도 못 내는 상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평소 지론이 일어나지 않은 일은 쓰지 않는다인 줄 안다. 소설 설정과 모델이 된 사건을 몇 가지 들어줄 수 있다면?

“많은 사건들이 있다. <시녀이야기>의 끝에 역사적 주해에서도 상당 부분 언급되어있고 그보다 더 많은 내용이 6월에 나올 <증언들>의 페이퍼백 에디션의 부록에 수록되어 있다.”

-한국에도 성폭력, 낙태죄 등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났으며 성폭력 고발과 낙태죄 폐지 등 현실적 성과가 있었다. 한국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녀와 여성에 관한 법률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여성인권 국제민간단체 ‘이퀄리티 나우’를 소개하고 싶다. <증언들>의 출판기념회도 함께한 바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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