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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전염병, 공포 넘어 이성의 빛으로…‘코로나19 시대’ 필독서

등록 2020-02-28 06:00수정 2020-02-28 10:48

몸집도 크고 숫자도 많은 인간이야말로 바이러스에게 가장 먹음직스러운 존재
‘새 판데믹 시대’ 예언한 바이러스 사냥꾼들부터 백신 생산과 수용 망설임까지

‘지금, 여기’에서 질문한다. 마스크와 손씻기, 자가격리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디스토피아에 대한 우울한 전망만으로 머릿속을 채워야 할까? 미국의 유명한 과학저술가 데이비드 콰먼은 “똑똑해지라”는 답을 내놓는다. 주기적으로 창궐했다가 자연 소멸하는 천막 애벌레와 인간의 결정적 차이는, 호모사피엔스는 똑똑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전염을 막을 방법을 실천한다면 인간은 감염병의 위협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한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를 비롯해 각종 감염병의 발생 배경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높이고, 장기적인 대응 방법을 알아보자. ‘무지’에서 벗어나 성찰의 지혜를 얻기 위해 5명의 전문가들로부터 ‘지금 우리’에게 긴요한 7권의 책을 추천받았다.

입문서부터 시작하자. 동물전염병 국제전문가이자 수의사인 최강석이 쓴 <바이러스 쇼크>(매경출판)는 메르스·에볼라·사스부터 코로나19까지 박쥐를 보유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 이야기로 시작한다. 박쥐는 동굴 등에서 수백만 마리가 집단으로 서식하고 수명(최장 50년)이 길며 다른 포유동물보다 체온이 2~3℃ 높아 항바이러스단백질(인터페론)이 항상 활성화돼 있다. 종 다양성이 높기 때문에 수많은 종류의 바이러스가 서식하는 데 맞춤하다. 지은이는 오로지 숙주 내에만 기생하는 바이러스와 외부에서 증식 가능한 세균의 차이점, 19세기 말 바이러스를 최초로 발견한 과학자들, 동물 바이러스가 종간 장벽을 넘어 다른 종의 숙주에게로 넘어오는 ‘스필오버’ 등 바이러스에 대한 기본 지식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출판사는 ‘코로나19에 대한 10가지 궁금증’을 추가하는 등 내용을 다시 손질해 재빨리 개정판을 내놨다.

심화학습이 필요하다면 네이선 울프의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강주헌 옮김, 김영사)가 당신을 기다린다. 바이러스와 인간이 어떤 상호작용을 거치며 진화했고, 치명적 바이러스가 인류를 어떻게 위협했는지,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과학 지식의 방대한 축적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여전히 세계적인 유행병에 취약한 이유를 분석한다. 방대한 저술과 논문을 인용하지만, 각각의 챕터마다 저자가 장기간 진행해온 현장 연구의 경험을 생생하게 녹여낸 까닭에 문화기술지적 교양서로도 손색이 없다. ‘바이러스 사냥꾼들의 인디애나 존스’로 칭송받는 저자는 인류가 ‘새로운 판데믹 시대’에 진입했다고 경고하는데, 그가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은 확산력은 높으나 치사율이 낮은 바이러스와 확산력은 낮아도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유성생식을 통해 결합하는 경우다. 예컨대 확산력이 높은 신종인플루엔자(H1N1) 바이러스와 치사율이 높은 조류인플루엔자(H5N1) 바이러스가 한 사람의 몸 안에서 만나 돌연변이를 일으킬 때 인류에게 파국적 재앙을 불러올 ‘바이러스 폭풍’이 밀어닥칠 수 있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대응이 아니라 예측이다. 그가 설립한 ‘국제바이러스예보계획’(Global Viral Forecasting Initiative)이라는 연구소가 세계 전역의 병원균 빈발 지역에 ‘정보수집초소’를 설치해 운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천연두, 소아마비처럼 인간만 침범하는 바이러스는 백신 개발·접종으로 인해 거의 박멸됐다. 우리 앞에 놓인 최대 위협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전파되는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이다. 최근 40년 동안 인수공통감염병 사망자는 전 세계 2900만명이 넘는다. <도도의 노래>로 유명한 데이비드 콰먼이 쓴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강병철 옮김, 꿈꿀자유)를 펼쳐 든다면, 전염병을 이해하는 마스터키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다. 바이러스 처지에선 종을 뛰어넘는 것은 “승산 없는 도박”과 비슷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전혀 다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화석 기록으로 볼 때 몸집이 큰 동물 종 중 현생인류처럼 많은 개체 수(70억명)에 이른 단일 동물 종은 하나도 없다. 몸집도 크고 숫자도 많은 인간이야말로 바이러스에게 가장 먹음직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인간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흙과 물, 대기를 더럽히고 부를 과시하기 위해 ‘야생의 맛’을 즐기는 탐욕스러운 존재다. 인간이 다른 종의 서식지를 거리낌 없이 파괴하면서 종간 접촉 기회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날로 확대되는 수송 능력과 여행지는 삽시간에 병원체를 옮기는 조건을 마련했다. 어찌 보면 인수공통 감염병이 창궐하는 이유는 “바이러스가 특별히 인간을 표적으로 삼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너무 주제넘게 침범하기 때문”이다. 콰먼은 “인간은 자연계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면서도 “개인의 분별 있는 행동과 선택”이 감염률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말한다.

<두 얼굴의 백신>(스튜어트 블룸 지음·추선영 옮김, 박하)은 공공보건의 승리인 동시에 많은 이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된 백신의 딜레마를 짚는다. 백신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만, 항상 유효한 건 아니다. 가령 1976년 미국 정부는 ‘돼지독감’을 예방하기 위해 4000만명 넘게 백신을 접종했지만, 부작용으로 54명이 길랭-바레 증후군을 진단받았을 뿐, 감염병 자체로는 최초의 확진자 1명만 숨졌다. 백신은 정치 논리에도 깊숙한 영향을 받는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불어닥친 1980년 이후 많은 국가는 백신 개발을 공공부문에서 민간영역으로 옮겼고, 제약회사들은 최빈국에 필요한 백신을 거의 개발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지승호 지음, 시대의창)는 2012년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의료 전문가·시민단체 등이 기획하고,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의사·간호사 등 18명을 인터뷰한 책이다. 당시 메르스 확진자 중 의료인은 25명으로 전체 확진자의 13.4%에 이르렀다. 불안과 공포 속에 ‘각자도생’해야 했던 시간을 복기하면서, 초기 방역 대응의 문제점, 의료인들의 태도, 보건당국·지방자치단체·의료기관 간의 협업 실태 등을 돌아본다.

<은유로서의 질병>(수전 손택 지음·이재원 옮김, 이후)은 질병을 응시하는 우리의 태도를 성찰하는 책이다. “우울해 하는 여성이 쾌활한 여성보다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식으로 ‘발암적 성격 유형’을 분류하는 폭력, “행복한 사람은 페스트에 걸리지 않는다”는 무지와 환상이 왜 그토록 오래 계속되었을까? “질병은 은유가 아니다”라고 단언하는 지은이는 질병에 꼬리표를 붙여 낙인·배제·혐오·낭만화 등을 자아내는 행동을 준열하게 비판한다.

<위험한 요리사 메리>(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곽명단 옮김, 돌베개) 역시 배제와 낙인의 대명사였던 장티푸스 ‘슈퍼 전파자’ 메리 맬런을 통해 공포 속에서 망각되는 인권의 문제를 제기한다. 20세기 초 뉴욕의 상류층에서 솜씨를 인정받은 요리사 메리 맬런은 본인은 건강했지만, 장티푸스 보균자로 여러 집안의 식솔 24명을 장티푸스 환자로 만들었다. 아일랜드 이민 노동자에다가 싱글 여성이었던 메리는 순식간에 보건당국과 언론의 마녀사냥 희생자로 전락하고 26년간 격리 병동에 유폐돼야 했다. 질병에 대한 낙인과 혐오의 재앙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 책을 추천해주신 분들

강병철 의사·번역가/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남재환 가톨릭대 생명공학과 교수/이은희(하리하라) 과학저술가/정인경 과학저술가

출판계도 ‘감염병’으로 들썩

출판계도 코로나19에 얻어맞았다. 지난달 열릴 예정이었던 타이베이국제도서전이 5월로 연기된 데 이어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테헤란국제도서전도 각각 5월과 6월로 미뤄졌다. 온라인 서점의 도서 엠디(MD)들 또한 출판사와의 만남을 일제히 취소하는 형편이다. 얼어붙은 출판시장에서 그나마 꿈틀거리는 분야는 역시 ‘전염병’ 관련 분야다. 관련 분야 도서의 개정·증보판이 나오거나, 병원체를 다룬 책들이 부쩍 늘었다. 이번 달만 해도 슈퍼박테리아와 그 항생제를 연구하는 의사들의 분투기를 다룬 <슈퍼버그>(맷 매카시 지음, 흐름),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김영사)가 출간됐으며, 다음달엔 <오늘도 미생물>(이재열 지음, 사이언스북스)이 선을 보인다. 곧 출간될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제니퍼 라이트 지음, 산처럼)는 흑사병·장티푸스·기면성뇌염 등을 다루면서, 의학적 노력 외에도 정부의 투명한 정보 공개, 민첩한 방역 활동 등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축집단사육에 의한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 등을 경고해온 의학사가 마크 해리슨이 쓴 <전염병의 세계사>(가제, 푸른역사)도 번역을 거의 마쳤다. 2018년 영국에서 출판된 <전염병 아틀라스>(The Atlas of Desease, 샌드라 헴펠 지음)를 놓고 국내 출판사가 판권 경쟁을 벌이는 등 질병·보건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3월 6일 발간되는 과학잡지 <스켑틱> 21호도 코로나19와 관련한 특집호를 준비 중이다. 인터넷만큼 빠른 질병의 확산 속도를 보면서 복잡계, 바이러스, 면역, 질병에 대한 혐오의 측면을 두루 짚는다. ‘복잡계로 본 전염병’(김범준), ‘환경파괴가 불러들인 재앙’(강병철), ‘바이러스의 미래’(송대섭), ‘생각보다 강한 우리의 면역’(이원우), ‘전염병과 그 혐오의 공진화’(박한선) 등의 글이 실렸다. 관련 주제를 다룬 책들은 판매도 호전됐다. 한길사의 고전 <문명과 질병>(헨리 지거리스트)은 2008년 출간 이래 연평균 100여부씩 판매됐으나 2월 한 달 동안에만 50권이 판매됐다고 한다. 메디치미디어는 8년 전 출간한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 세상을 바꾼 의학의 10대 발견>을 이참에 광고와 마케팅을 통해 띄울 계획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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