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지음/알마·1만4400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터널을 통과하던 1997~1998년은 한국 담론시장을 이끌어갈 ‘고수’들이 집단적으로 데뷔한 시기이기도 하다. 유시민이 1997년 독일에서 귀국해 정치시사평론가로 데뷔했고, 이듬해 김어준이 <딴지일보>를 차리고 총수에 취임했다. 같은 해 ‘B급 좌파’ 김규항이 <씨네21> 고정기고를 통해, 진중권이 박정희의 본질을 까발린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출간해 ‘글발’을 날렸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조국 사태’로 갈라진 두 진영의 대표 논객들로서 여전히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조용했던(?) 김규항이 <혁명노트>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평론서를 내놨다. 예수의 영성 속에서 혁명성을 찾아보려 했던 전작 <예수전> 이후 11년 만이다. 여기서 혁명의 대상은 자본주의 체제, 도구는 마르크스의 통찰이다.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이며, 노동이야말로 인간과 다른 동물을 가르는 기준선이다.” 계급과 계층,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노동과 노동력, 가치와 가격이 어떻게 다른지, 물신성이 어떻게 자본주의 세상을 지배하는지 손에 쥐어주는 듯한 친절한 해설이 이어진다. 인공지능(AI), 로봇, 공유경제 시대에 웬 철 지난 개념들이냐고? “계급(론)은 방식이 아니라 사실의 문제이고, 계급의식은 사실을 사실대로 이해한 결과일 뿐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기댄 사회분석에 얼마나 수긍할지는 독자 제현의 몫이리라. 다만 김규항 글의 미덕인 간결함, 주서사인 본문과 보조서사랄 수 있는 주석 겸 해설을 쪽마다 번갈아 배치한 혁신적인 편집에는 읽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듯하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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